은행 결제 인프라의 개방, 오픈뱅킹이 촉발하는 금융 혁신

202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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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석 (EY한영 Korea Digital Lead 파트너)

2019년 10월 30일 10개 은행을 시작으로 12월까지 18개 시중은행 및 특수은행이 오픈뱅킹에 참여했다. 오픈뱅킹 시작 한 달 만에 240만 명 넘더니 2020년 1월 현재 1,200만 명이 넘는 고객이 오픈뱅킹에 동의했다.

여기에 올해 제2금융권도 오픈뱅킹에 참여하면서 업종의 경계를 없애는 금융 혁신이 본격화된다.

오픈뱅킹의 도입 배경

금융결제 특히 은행간의 결제 네트워크는 은행업 인가를 받은 기업만이 참여할 수 있어 은행업에 있어 가장 높은 진입장벽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사는 고객이 결제하는 당일의 물품대금을 판매업자에게 송금해야 하고, 고객으로부터 매월 청구금액을 자동이체 받아야 하는데, 이 때 이용하는 은행 결제망(개별 은행 지불 대금 포함) 사용료로 연간 수 백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카드사 하나가 지불하는 비용이 수 백억 원이므로, 카드업 전체의 비용은 수 천억 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보험사는 보험료 징수를 위해, 증권사들은 증권계좌 입출금을 위해, 카카오페이, 토스 등 핀테크 기업들은 간편결제 및 간편송금을 위해 은행 결제망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한 규모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금융사 또는 핀테크 기업들이 업종을 뛰어넘는 혁신 서비스를 시도하려 할 때, 마케팅과 고객 유치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은행 결제망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커 성장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나왔다. 은행 결제망이 진입장벽을 넘어 금융 혁신을 가로막는 기득권이 되었다는 지적이 지속되어 정부 당국이 과감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으니, 그것이 “오픈 뱅킹”이다.

영국의 오픈뱅킹 현주소

오픈 뱅킹은 유럽 등 해외에서 먼저 적용되었다. 거기에는 한국보다 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한국은 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은행간 실시간 자금 결제 및 이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어, 적절한 심사를 통과하면 유료로 은행 결제망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결제망 덕분에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이용하지 않고도 간편결제, QR 결제 등 신기술을 활용한 상거래 결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은행 간 결제를 중계하는 기관이 없다 보니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 은행이 다르면 신용 및 직불카드 외에는 상거래 결제를 실시간으로 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카드수수료가 상거래의 부담이 되었고, 은행 및 지급결제 시장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보호받으며 경쟁과 혁신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핀테크 열풍이 불어 금융산업에서의 디지털 혁신이 본격화되면서 은행들이 보유한 결제망을 강제로 열게 하는 오픈 뱅킹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2018년 전 금융권이 오픈 API를 통해 은행 결제시스템을 오픈하도록 규제화하였다.

 

오픈 뱅킹을 시행한 지 2년이 지난 2019년 말 현재 영국 금융당국이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오픈뱅킹에 참여한 핀테크 및 은행이 204개나 되고, 1백만 명의 소비자가 연간 12억 건 이상의 API 트랜잭션이 일으키고 있다.

물론 아직 참여 소비자의 수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오픈 API의 규격은 안정화되었고 향후 참여 소비자가 늘어날 경우 연간 18조 원에 가까운 비용절감의 혜택이 개인소비자 및 자영업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에 2020년에는 오픈뱅킹에 대한 추진에 박차를 가해 소비자, 금융사, 개발자(Developer) 모두를 지원하는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지급지시서비스업과 종합지급결제업

우리나라도 오픈뱅킹 시행이 본격화되면 생태계 내에 새로운 사업자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여진다. 2020년 2월 19일 발표된 금융위 업무 계획을 보면 지급지시서비스업 (PISP, Payment Initiation Service Provider)과 종합지급결제업에 대한 신규 인가를 허락할 것이라 천명했다.

지급지시서비스업은 결제계좌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한 번의 로그인만으로 모든 금융기관의 계좌에 있는 자금을 자유롭게 결제 및 송금 처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종합지급결제업은 이에 더 나아가 소비자에게 결제 계좌를 발행하고 오픈뱅킹을 활용해 지급결제지시를 할 수 있는 기업이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가입 신청서를 작성할 때 현재는 청구액 자동이체를 위해 은행계좌번호를 기입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은행계좌가 아닌 종합지급결제업자가 발행한 계좌번호를 기입해도 신용카드 가입이 가능해진다.

급여이체 계좌도 은행계좌가 아니라 종합지급결제 계좌로도 급여를 자동이체로 받을 수 있다.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의 인가

지급지시서비스업이나 종합지급결제업은 원래 은행업이 하는 고유 업무영역으로 거대한 은행업 업무 범위에 포함된 서비스이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밝혔듯이 은행에 포함된 다양한 서비스를 하나씩 쪼개어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 형태로 인가함으로써 소규모 핀테크 기업들이 대규모 자본이 없어도 혁신 금융 서비스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기존에는 핀테크들이 은행들을 일일이 설득하여 제휴를 맺어야만 간편결제 또는 간편송금 등이 가능했으므로, 은행이 갑의 위치에서 핀테크 기업들을 평가하고 은행의 정책과 전략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핀테크 기업이 스몰 라이선스를 획득하면 은행에 의존하지 않고 이체 및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직접 계좌를 발행하여 다양한 금융 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오픈뱅킹 시행 이후 핀테크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다. 예를 들어 2015년 설립된 지급결제 및 송금 핀테크 기업인 레볼루트(Revolut)는 오픈뱅킹이 시행되기 전인 2017년에는 75만 명에 머물렀던 고객수가 오픈뱅킹 시행 후 2019년에는 3백만 명으로 크게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오픈뱅킹 및 스몰 라이선스가 기존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

은행업

은행 수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결제 대기를 위해 또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보통예금에 낮은 금리로 예치되어 있는 저원가성 예금의 규모이다. 그런데 핀테크 기업 또는 신용카드사 등이 종합지급결제업을 획득하여 저원가성 예금을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

급여이체, 가맹점의 카드대금 이체 등이 종합지급결제계좌로 빠져나갈 경우 은행의 수익기반이 악화되어 은행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행이 저원가성 예금을 지키기 위해 종합지급결제계좌보다 사용하기 편한 앱을 개발하고 경쟁적으로 더 좋은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원가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은행 경영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은행은 무엇보다 기존 고객을 어떻게 수성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은행이 보유한 크고 다양한 자원을 조율하여 종합지급결제업자가 줄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맞춤상품, 신용관리, 고객서비스 등 전반에 경주해 은행에 남아서도 핀테크 수준의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용카드업

신용카드사들은 가능하면 종합지급결제업을 획득한 후, 고객들이 청구서 결제를 은행계좌가 아닌 자신들이 발급한 종합지급계좌에서 하도록 유인하는 마케팅을 펼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매년 지불하던 수 백억 원의 은행 결제망 이용료를 절감할 수 있으므로 초기 마케팅 비용을 아낌없이 퍼부을 것이다.

또한 종합지급계좌를 통해 타 카드사 대금도 결제하도록 유도하면서 고객의 경쟁사 카드 사용 동향도 파악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이 계좌에 담기는 자금을 이용하여 보험,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 중계사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신용카드 외의 지급결제 수단이 다양해지므로 카드결제 규모가 줄어들어 고객장악력이 약화될 우려가 상존하다. 따라서 신용카드사 입장에서 종합지급결제업의 시행은 큰 기회가 됨과 동시에, 자칫 카드업 본연의 경쟁력을 등한시할 경우 개별 기업 수준이 아닌 업계 전반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증권업

신용카드사와 마찬가지로 증권 결제계좌에 지급하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기회는 중국 알리바바의 지급결제 자회사인 알리페이가 2013년 선보인 위어바오 모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위어바오는 알리페이 사용을 위해 충전해 둔 자금을 활용하여 MMF 등 투자상품에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설계한 상품으로, 출시 1년여 만에 100조 원의 자금을 유치했고 지금은 300조 원의 자금을 유치한 초히트상품이다.

증권사가 보유한 다양한 투자상품 설계 및 추천 역량을 종합지급결제 계좌와 결합함으로써 금융 투자를 대중화하여 브로커리지 수수료에 치중된 사업구조를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로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페이가 최근 바로증권을 인수하여 카카오페이증권으로 개명하고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중에 하나가 위어바오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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