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 역량과 산업의 경쟁력 강화

2017.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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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고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제조 경쟁력이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도화될수록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그 취약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역량은 무엇이며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 몇몇 기업 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글 김준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사진 한국경제DB

 


소프트웨어 역량이란?
지난 6월과 7월 삼성은 그룹 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되돌아보는 사내 방송을 전 계열사 임직원에게 생중계했다. ‘삼성 SW경쟁력백서’와 ‘우리의 민낯’이라는 방송으로, 인공지능AI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등장했으나 정작 삼성은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이 부족하고, 소위 말하는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르니 설계가 엉망이며, 기초 설계가 부실하니 작은 개선도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그간 국내 산업계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기계장치 같은 하드웨어를 작동하는 운영체제 등 알고리즘으로 이뤄진 제어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이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능력이 소프트웨어 역량이라고 이해했다. 삼성은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하던 2008년에 1만3000명이던 소프트웨어 인력을 2015년 3만6000명으로 3배나 늘리면서 국내 소프트웨어 인력을 싹쓸이 하다시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지 못하는 소프트웨어 역량은 도대체 무엇일까.
소프트웨어는 생명주기가 짧으며 대부분의 지식은 코드화되고, 매뉴얼 형태로 학습, 이전, 공유된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알고리즘은 응용 범위가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어 기술의 성숙과 포화보다는 진화와 창조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혁신론에서 보면 명시적 지식이 매뉴얼 형태로 돼 있어 모방이 쉽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의 출현 빈도가 높아 완성도 높은 기술이더라도 시장 지배력은 길지 않다. 언제든지 시장에 새로운 진입자가 출현 가능하며 이들의 진입 경로도 다양하다. 이는 선발자도 자만하면 안 되지만 후발자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삼성이 못한다고 고백한 소프트웨어의 역량은 제품 개발 역량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는 역량, 그리고 이를 시장 경쟁에서 지켜내고 새롭게 재생산해내는 역량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100년 기업 GE의 산업 인터넷
소프트웨어 역량이 단순히 소프트웨어의 개발 역량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기업이 바로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에디슨이 100년도 전에 설립한 GE는 한때 잭 웰치에 의해 금융 기업으로 변신했으나 제프리 이멀트에 의해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 중이다.
GE가 생산하는 항공기 엔진은 산업 주기가 20~30년이나 걸리는데 이를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라는 가상공간에 실제 엔진 모형을 만들고 센서로 항공기 장비와 항공사 시스템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면 기존 진단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항공기 운항의 방해 요소를 사전에 예측하거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디지털 쌍둥이는 GE가 개발한 운영체제인 프레딕스Predix 내 구축돼 있으며 항공, 발전기, 의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GE는 애플, 구글과 경쟁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GE의 경쟁 우위도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서 플랫폼에 기반을 둔 산업 인터넷의 생태계 리더십으로 전환되고 있다.

 

패션 기업 올세인츠의 디지털 전환
영국의 올세인츠All Saints는 전통 산업인 패션 영역에서 소프트웨어 역량을 보여준 기업이다. 매출 하락으로 고전하던 올세인츠는 전 세계 매장과 물류, 소비자를 하나로 연결하는 물류 시스템과 결제 시스템을 구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형태로 회사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바꿔 직원들이 바로 소통하도록 했다. 손쉬운 소통으로 여러 부서가 다양한 의견을 교류해 창의적 아이디어가 쏟아졌고, 이를 기반으로 본사, 매장, 제품, 재고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을 디지털화했다. 이제 고객은 휴대전화를 통해 재고 유무 상황을 파악하고, 올세인츠는 고객으로부터 수집한 다양한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활용한다.
소프트웨어 인력만 100명이 넘는 올세인츠는 코딩부터 플랫폼까지 자체 개발하고 사내에 기술과 지식 노하우를 축적했다. 4년간의 디지털 전환으로 영국, 유럽, 북미, 아시아, 중동 등 16개국 140개 직영 매장을 개설했고, 홈페이지에서 200개 이상의 국가에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변신했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역동적 혁신
마이다스아이티는 구조해석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구조해석 소프트웨어는 전문 사용자 중심이기 때문에 시장이 협소하다. 건축의 안전과 관련 있어 오토캐드나 벤틀리 같은 선도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고 후발 주자의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마이다스아이티는 역동적인 혁신의 경로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마이다스아이티는 건축 구조해석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응용한 토목과 기계 분야의 구조해석 제품을 출시했고, 해석 영역을 설계 영역까지 확장하며 글로벌 경쟁 기업이 대응하지 못한 새로운 경로를 신속하게 창출하며 성장했다. 2015년에는 건축, 토목, 기계 지식 모두를 융합해서 지식의 복잡도가 높은 고난이도의 플랜트 설계 소프트웨어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소프트웨어 역량이란 바로 이러한 역동적 혁신의 경로Dy-namic Path of Innovation를 창출하는 역량도 포함한다.

 

로켓인터넷의 속도·통합·재편
2007년 설립한 로켓인터넷은 2015년 110개국에 진출했고 직원 1800여 명이 매출 1억3000만 유로, 시가총액 62억 유로를 기록했다. 사업 분야는 전자상거래, 부동산, 자동차, 유통, 패션, 홈리빙, 식음료 등 36개에 이른다. 글로벌 기업과 정면 승부해야 하는 신흥 시장만을 대상으로 하고, 에어비앤비와 우버 같은 선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해서 진출한 점이 독특하다.
로켓인터넷의 강점은 신속한 서비스 출시와 시장 선점이다. 초기 사업 분석에서 서비스 출시까지 100일이 걸리지 않으며, 투자 유치와 글로벌 사업화 과정까지 전 프로세스가 1년 내에 추진된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선발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면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후발자의 신규 진입이 어려워지므로, 신속히 출시하고 시장 반응에 따라 수정, 보완하는 전략을 중시한 것이다. 이렇게 출시된 사례가 ‘헬프Help’다.
이러한 속도의 해답은 소프트웨어에 있다.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서비스 간 공통 기능을 통합하면 출시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결제나 데이터의 저장과 전송 등은 모든 서비스에 적용되며 고객관리, 광고 플랫폼 같은 비기술적 영역도 다양한 서비스 간에 공유하고 통합하면 비용 절감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라자다와 같이 동남아 전자상거래 1위를 기록한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는데, 생명주기가 짧은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1위를 지키기보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역량이란!
앞에서 소개한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거대한 기술 변혁의 파고를 넘기 위한 역량과 전략적 노력을 보여주었는데, 이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기술 그 이상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 경쟁과 고도화를 통해 자신만의 생존 경로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유지해 가는 역량capabilities이다. GE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기반을 둔 산업 인터넷으로 기존 터빈과 발전기를 디지털화했지만 궁극적으로 기존 산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주도권을 확보해 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량의 역동성
소프트웨어 역량이 개발력, 경로 개척과 경쟁 우위 확보 등을 포함한다고 볼 때, 이 요소들의 조합은 산업별, 기업 크기별, 역량 수준별로 다를 수 있다는 데 역량의 역동성이 있다. 중소기업인 로켓인터넷의 혁신은 속도와 재구성 같은 비즈니스 민첩성agility 정도였고, 올세인츠의 디지털 문화도 패션이라는 영역을 넘지 않았으며, 마이다스아이티는 역동적으로 자신만의 경로를 창출했지만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라기보다 기존 역량의 외연을 확장하는 정도였다. 반면 동원 가능한 자원과 역량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대기업의 경우 과감하고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장기적 관점에서 소프트웨어 역량을 구사하는 기업은 기업의 외부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술 측면에서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패러다임은 기존의 경쟁 우위를 무력화하지만 후발자에게는 일종의 기회가 되는 이중적 측면이 있다. 후발자든 선발자든 변화의 트렌드에 올라타야만 생존이나 추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GE는 전기, 금융 분야를 개척했으나 지금은 기존 경쟁 우위를 가진 중후장대형 장치 산업을 디지털 트윈과 프리딕스로 승화시켜 제4차 산업혁명의 트렌드에 올라타려고 한다. GE가 위대한 기업인 이유다.
한편 다소 극단적인 사례지만, 로켓인터넷은 그야말로 로켓과 같은 스피드로 등장해서 다양한 영역 간 공동 전문화를 추진하며 사업을 성장시키지만 1위를 달성하면 팔아 버리고 다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역동성을 보여줘, 새로운 기회에 올라타며 성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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