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규제 샌드박스와 지정대리인 제도를 통한 금융 혁신으로의 한 걸음
이상일 디지털데일리 기자
은행과 증권, 카드, 보험사 등이 확고한 자리에서 경쟁을 벌이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하지만 최근 이들 금융사들의 ‘기득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올 하반기 ‘오픈뱅킹’ 시스템이 오픈되면 핀테크 스타트업, 비 금융기업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이 금융시스템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에 앞서 금융당국은 다양한 혁신금융서비스를 타진해보고 이러한 서비스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금융 규제 샌드박스’와 ‘금융 지정대리인’ 제도를 운영 중이며 이르면 상반기부터 상용 서비스가 출시될 계획이다. 이 글에선 2가지 제도를 통한 금융 서비스의 혁신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사라지는 금융장벽
금융 산업은 전통적인 인가사업, 즉 라이선스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이는 금융시장의 교란이 사회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990년대 사상초유의 ‘IMF’위기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금융시장의 위기가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금융시장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정책을 실현하며 특히 국내의 경우 시중은행의 구조조정이 일어난 IMF 무렵을 계기로 적극적인 금융당국의 조정이 시장을 움직여왔다.
이후 저축은행 부실 사태, 가계 및 개인 신용카드로 인한 부채 증가 등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몇 번의 위기를 거쳐 왔다. 자연스럽게 정부의 금융시장 정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도를 타고 보수적이었던 금융권도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특히 폐쇄적이었던 금융시장이 이제 비 금융권에까지 그 문호를 개방하는 모양새다. 이는 전 세계 금융시장이 금융사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에게 개방되는 추세 탓이다. 앞서 스마트폰 보급으로 촉발된 ‘비대면’ 금융서비스의 고도화가 금융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인가받은 사업자를 통해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금융사들은 기존의 ‘판’을 깨는 서비스나 금융상품 출시에 소극적이었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긁어 부스럼’이 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심의 및 인가에 인색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서비스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활성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블록체인 및 가상화폐 거래소의 위상에 비해 금융당국과 정부의 정책은 ‘비법(非法)은 불법(不法)’이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때문에 가상화폐거래소와 일련의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인 지위논란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2016년을 전후해 본격화됐던 ‘핀테크’ 서비스에 있어서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규제 탓에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른바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수없이 반복돼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정책과 ‘데이터 경제’ 등의 정책이 입안, 구체화되면서 금융당국의 정책기조도 변화하고 있다. 앞서 ‘가이드라인’ 준수로 대표되는 금융보안 규제 방식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마련하고 나머지는 금융사 자율에 맡기되 책임을 강하게 묻는 정책으로 바뀐 것처럼 금융서비스에 있어서도 금융사와 핀테크, 그리고 비 금융기업에 책임에 맡기는 개방된 환경의 금융시장 활성화에 정부와 금융당국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개방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금융시장을 열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금융시장은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모든 금융서비스가 상호 연결돼있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군데서 발생하는 금융사고가 국내 전 금융서비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정책을 통해 혁신금융서비스의 안정성과 가능성을 미리 타진하고 혁신금융서비스에 대한 규제 정책을 고도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변화 움직임
금융당국은 현재의 규제체계로는 신기술·신산업의 빠른 변화를 신속히 반영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지난 2018년 3월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을 위한 규제혁신 5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금융혁신법이 지난 4월 1일 본격 시행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기술·신산업의 육성과 국민의 생명·안전 등 공익적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궁극적으로 정교하고 안전한 규제설계를 추구하는 제도다. 기존 규제에 발목이 잡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싹도 트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규제혁신을 위해 정부는 세 가지 제도를 도입했다.
우선 기업들이 신기술·신산업 관련 규제 존재 여부와 내용을 문의하고 30일 이내 회신 받는 규제 신속확인 제도와 안전성과 혁신성이 뒷받침된 신제품·신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규정이 모호하거나 불합리하여 시장출시가 어려울 경우에는 임시허가를 통해 시장출시를 앞당길 수 있게 했다. 또한, 관련 법령이 모호하고 불합리하거나, 금지규정 등으로 신제품·신서비스의 사업화가 제한될 경우 일정한 조건하에서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실증 테스트도 가능하게 됐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금융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 ▲핀테크 기업과 금융회사에게는 새로운 혁신서비스의 사업성을 시장에서 검증해 볼 수 있는 금융혁신의 장이 되고, ▲금융소비자에게는 다양한 혁신서비스를 통해 금융의 접근성을 높이고, 금융비용 부담은 줄이는 포용금융을 체감하게 하고, ▲정부도 혁신서비스가 소비자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궁극적인 규제개혁을 검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금융의 미래 혁신금융서비스
한편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금융 규제 샌드박스 사전 접수를 진행한 이후 4차례에 걸쳐 총 32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지속적으로 규제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사항,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활용한 금융서비스의 다양한 실험 대상 ▲금융과 산업의 융합, 타 산업과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인 파급효과가 있는 서비스 ▲혁신의 편익이 개인사업자, 초기기업, 일반 국민 등 다양한 이용자에게 최대한의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서비스를 중점으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에 나섰다.
32개 혁신금융서비스 중 종류별로는 대출 서비스가 가장 많았고, 지금결제·송금 부문, 마이데이터·빅데이터·신용조회업, 자본시장, 보험 , 개인 간(P2P) 대출 등의 순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우선 상용화될 주요 혁신금융서비스로는 ▲국민은행의 알뜰폰을 이용한 금융‧통신 결합서비스 제공 ▲디렉셔널의 블록체인을 활용한 개인투자자에게 주식대차거래 기회 제공 ▲농협손보와 레이니스트의 해외여행자보험 계약 시 특정 기간 내에 반복적으로 재가입하는 경우 보험가입‧해지 서비스 ▲신한카드의 개인간 신용카드 송금서비스와 가맹점정보 활용 개인사업자 신용 평가 서비스 ▲BC카드의 개인 판매자가 모바일 플랫폼 QR을 활용한 신용카드 결제하는 서비스 ▲페이플의 SMS 인증방식 출금동의를 허용한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 ▲루트에너지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지역주민이 투자자로 참여해 수익을 창출하는 P2P금융서비스 ▲코스콤의 비상장기업의 주주명부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서비스 ▲페이민트의 오프라인 신용카드가맹점의 ‘온라인 주문 서비스(이하 O2O서비스) 결제 과정의 복잡한 결제대행·자금정산 프로세스를 간소화·투명화한 지급결제서비스 ▲코나아이의 선불거래지급수단을 기반으로 지인간 계모임의 주선, 곗돈관리‧정산 등을 지원하는 서비스 ▲지속가능발전소의 뉴스데이터, 공공데이터 등을 통해 수집된 중소기업의 비재무정보(ESG)를 분석하여 기업의 부도가능성 및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AI활용 기업신용조회서비스 ▲세틀뱅크의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SMS 인증방식의 출금동의를 거쳐 계좌를 등록하고 간편하게 결제하는 서비스 ▲빅밸류·공감랩의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50세대 미만 아파트 등 시세 및 담보가치를 산정하는 서비스 등이다.
이 중 마이뱅크, 핀셋, 핀다, 토스 등 핀테크 업체가 대출상품 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우선 출시한다. 이들 대출상품 비교 플랫폼은 각 금융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대출상품 중 금리나 한도 등 측면에서 금융고객에게 유리한 최적의 대출상품을 비교 직후 신청까지 마칠 수 있다.
보험을 켜고(On) 끄는(Off) 방식의 해외여행보험도 선을 보인다. NH농협손해보험과 레이니스트보험서비스가 출시하거나 계획 중인 이번 서비스는 기존에도 해외여행 시 비대면을 통해 간단하게 해외여행자 보험을 가입할 수 있었지만 이번 서비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에 한 번 들어놓고 필요할 때 필요한 기간만큼만 보험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편 금융당국은 제도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기 위해 시행 초기 단계에서 부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업계‧협회, 신청‧접수 전담기관 및 관계부처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전담기관 면담과 협회 간담회, 관계 차관회의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문가 등 언론의 제기 사항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국회와 민간 전문가 등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한다는 계획이다.
또, 신속하게 개선이 필요한 과제와 함께 제도에 대한 인식공유 미흡으로 제기되는 과제로 구분해 제도 개선‧보완이 필요한 과제는 신속한 정비 추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히 명백하게 불합리한 신산업‧신기술 규제는 규제 샌드박스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규제 관계차관회의‘등을 통해 신속하게 정비할 방침이다. 또, 샌드박스 운영 중인 과제라도 분기별 사후 점검체계를 가동하여 문제가 없을 경우 즉시 규제정비를 통해 시장출시를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 서비스의 위탁 가능해진다. 지정대리인 제도
지난 2017년 3월 발표된 혁신적 금융서비스의 조기정착을 위한 ‘혁신금융서비스 테스트베드’ 도입방안에서는 ‘비조치의견서’와 ‘위탁테스트 제도’ 등 현행 제도 아래서 운영 가능한 금융 규제테스트베드 제도들의 도입계획이 발표됐다. 이 중 이미 시행중인 비조치의견서, 위탁테스트 제도에 이어서 지정대리인 제도가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됐다.
금융산업이 대표적인 라이선스 업무라는 점에서 금융업은 허가받은 금융사만 영위할 수 있는데 라이선스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 역시 금융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현 제도 아래서는 금융회사가 수행하는 본질적인 업무, 예를 들어 은행의 예금수신업무나 대출 심사 업무 등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외부에 위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금융 시대에는 단순히 금융 업무에 국한해서는 무한 경쟁에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핀테크 등 새로운 기업들에게 금융시장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지만 반대로 기존 금융사들이 금융업이라는 한계에 묶여 있다면 금융시장의 성장이 오히려 불균형하게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때문에 금융당국은 금융서비스 부문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경우 금융위원회가 지정한 대리인에게 혁신금융서비스의 테스트에 필요한 업무를 위탁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이처럼 지정대리인은 금융회사의 업무를 위탁받아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검증하는 테스트를 실시할수 있도록 지정된 핀테크 기업 등을 의미한다. 지정대리인을 통해 대출 심사와 계좌 개설, 카드 발급 심사 등을 핀테크 기업도 2년간 수행해 볼 수 있게 된다.
지정대리인 제도는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테스트하고자 하는 금융회사(은행, 보험사, 여전사, 저축은행, 신협)와 핀테크 기업 등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금융회사와 업무위탁에 대한 협력관계를 구축한 핀테크 기업 등 지정대리인이 되고자 하는 핀테크 기업 등이 지정을 신청하면 금융위원회가 지정요건의 충족여부를 심사하게 된다.
심사과정을 통해 선발된 지정대리인은 금융회사와 업무위수탁계약을 체결한 뒤 시범운영을 실시하게 되는데 지정대리인 기업은 당연직 3명(금융위·금감원)과 4명 이내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위원회인 ‘지정대리인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한편 6월 현재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9개 핀테크 기업을 제1차 지정대리인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 5개 핀테크 기업을 제2차 지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핀테크 시장의 성장을 가지고 올 규제 개혁
금융위는 테스트를 통해 충분한 효과가 검증될 경우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따른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위탁 없이 핀테크 기업이 직접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제3차 지정대리인부터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에 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금융투자회사 등 자본시장 분야에서도 지정대리인 제도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그동안 고시로 운영하던 지정대리인 제도가 금융혁신법에 근거가 마련되면서 금융투자회사도 핀테크기업에 본질적 업무 위탁이 가능하게 되는 등 제도운영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사실 금융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도 자본시장업계에 특화된 업무는 코스콤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핀테크 시장이 은행을 시작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자본시장업계는 ‘로보 어드바이저’를 제외하고는 크게 차별화된 서비스가 나오지는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업계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테스트가 가능해진 만큼 새로운 혁신 서비스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 손병두 부위원장은 6월 17일 금융위·자본시장연구원·핀테크지원센터가 주최한 ‘글로벌 핀테크 규제환경 분석과 개선방향 세미나’ 축사에서 “글로벌 핀테크 유니콘을 육성하기 위해 전략적인 맞춤형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며 “국내 투자자들이 핀테크 산업 성장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스케일업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모험자본의 핀테크 투자확대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앞으로도 금융시장의 개방과 새로운 시장 플레이어 육성을 위해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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