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디지털 혁신,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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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n자산평가 이재균 이사

IT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디지털이란 0과 1, 그리고 이진법을 적용해 만든 숫자 조합이다. 그저 모아놓았을 뿐, 단순하고 의미 없던 숫자 조합은 의미 있는 규칙과 결합해 비로소 현실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렇게 디지털 데이터에 적용한 규칙은 범용성, 설득력을 갖춰 전 세계로 확산된다. 디지털의 힘이다.
인터넷이 확산되며 우리는 지켜봤다. 글로벌 데이터 인프라가 구축됐고, 디지털 데이터에 적용한 규칙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중이다. 이미 디지털은 개인의 삶을 바꾸었고, 디지털화 수준이 기업 성장과 국가 발전을 결정할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갖추었다.
특히 금융 산업은 기반이 ‘규칙’과 ‘정보’이기에 다른 산업에 비해 디지털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금융 산업에 미친 실질적인 영향은 여타 산업에 비해 오히려 낮았다.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중시하는 규제 산업적 특성 때문이었다.

IT 대기업의 금융 시장 진출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관통하며 디지털 혁신에 대한 요구는 전 산업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IT산업에서 힘을 키운 IT 대기업들이 금융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지불결제(Apple), 보험업(Google), 유통결제(Amazon Lending) 및 전자화폐(Facebook) 등 자사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금융시장 진입 시도가 이어졌다. 새로운 경쟁자들은 디지털 혁신과 한 발짝 떨어져 있던 금융기관을 담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시장환경은 금융기관이 디지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상황으로 이끌고 있다. 기술이 금융을 이끄는 테크핀(TechFin)과 금융이 기술을 이끄는 핀테크(FinTech)의 치열한 전쟁이 수년내 본격 개막할 것이다.

시장을 지배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IT 대기업에 대응하고자 해외에서는 금융 대기업과 IT산업이 서로 융합했다. 골드만 삭스는 이미 IT 기업임을 자처하며 IT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그 규모는 자사 정규직 인력의 30%에 달하는 수준이다. 나아가 IT기업을 벤치마킹해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조직 문화에 이식하려 하고 있다. 또한 핀테크 기업이나 IT기업에 투자를 확대해 디지털 혁신의 우군으로 삼았다. 동시에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재무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나 JP모간(JP Morgan) 역시 AI 비즈니스 플랫폼과 분석체계를 도입을 시도했다. 더불어 블록체인 기술 적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등 디지털 혁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우수한 IT 인재를 영입해 디지털 혁신 책임자로 임명하고, 인력의 20~30% 수준으로 IT 인력을 확충했다. 핀테크 및 IT기업에 대한 투자도 계속해왔다.

한편 AI, 빅데이터,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이 발전하며 기술 혁신기업들의 금융시장 진입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투자 중개, 자산관리, 데이터분석, 위험관리, 결제 자동화처럼 프론트-미들-백 업무영역 전반에 진출했다. 혁신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 금융기관은 거래 수익 감소, 혁신 역량 제고를 위한 비용 증대 등을 피할 수 없어 당장은 위협적인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혁신기업 시장 진출 덕분에 금융기관이 디지털 혁신 역량을 키워 향후 금융시장 경쟁을 준비할 수 있게 되니 장기적으로는 우군이다. 결국 서로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감소 인식한 대응 방안 모색

금융 대기업-해외 금융기관 디지털 혁신 외에도 국내 IT대기업의 금융시장 진출 준비를 바라보며 증권사 포함 국내 금융기관이 달라지고 있다. 카카오와 토스는 올해 증권업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카카오는 바로투자증권 인수 계약 체결 후 대주주 적격성심사를 신청하였고 토스 또한 금융투자업 인가를 신청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 혁신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임을 인식, 올해를 기점으로 디지털 기업 전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은 아마존 같은 유통기업 사례에서 경험했듯 증권사 간 치열한 경쟁으로 귀결될 것이다. 유통 비용 절감, 고객의 선택권 확장 등 소비자를 우선해 거래 수수료를 낮추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함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위험 요소인 ‘수익성 감소’를 인식하고, 이에 대응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시어스와 토이저러스처럼 파산하는 운명을 피하려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여타 경쟁자를 제치고 시장을 지배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그 시장의 지배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디지털 혁신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의 이익을 창출하고, 이와 충돌하지 않는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증권사 디지털 혁신과 역량 강화를 위한 방법

대형 증권사들은 네이버와 카카오톡 등 IT기업과 협업하거나 핀테크 기업과 제휴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혁신 역량 강화를 꾀하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AI·빅데이터 전담 조직 신설, 디지털 혁신본부 신설 등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또한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우수한 IT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관련 인력 채용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 핵심적으로 추진할 사항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체적인 개발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 인력을 시장에서 소싱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국내 굴지 증권사에도 없는 인력이 시장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관심 있는 젊은 개발자들을 모아 금융 특화 IT인재로 육성하는 것이 느리지만 가장 확실하다. 또한 그들을 지킬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IT인재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증권사에 머물도록 하려면 IT 인력의 특성을 인정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자체개발 역량을 기반으로 외부 핀테크 업체와 협업체계를 구축한다. 창업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며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IT 인재들이 회사에 머물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우수한 인재를 붙잡아둘 수 없다면 핀테크 업체와 협업을 강화하는 형태로 역량을 확보함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에도 자체 개발역량이 충분하면 핀테크 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인력의 기술적 역량이 부족하다면 핀테크 업체와 동등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란 불가능하다. 적어도 그들의 기술적 기반을 이해하고 증권사 내부 개발 경험을 핀테크 업체와 나누는 수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협력체계가 구축됐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조직을 새롭게 구성해 기획, 개발, 고객과 피드백 처리를 단위조직에서 수행한다. 디지털 혁신을 추진할 때는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는 사실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 디지털의 힘은 디지털화한 데이터에 적용한 규칙의 범용성에서 시작된다. 그 규칙의 범용성은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사용자와 개발자 사이 피드백으로부터 만들어지고 확장된다. 고객은 규칙의 범용성을 ‘디지털 경험’이라고 칭하며, 시스템 제공자 입장은 ‘버전업’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고객과 끊임없이 피드백할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체 기획, 개발을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나아가 제공한 가치에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빠르게 파악, 수정해 다시 제공할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춰야 한다. 기획부서, 개발부서, 고객 모니터링 부서 간 역할 구분에 시간을 투자하자.
서로 협조하며 책임을 나누는 업무 방식은 디지털 혁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기획자, 개발자, 운용자 그리고 단위 업무 전반에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의사결정자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완벽하게 시작하지 않았더라도 고객과 더불어 꾸준히 성장하는 조직이 디지털 혁신에 잘 어울린다.

넷째, 큰 그림과 실천 가능한 목표가 양립해야 한다. 실천 가능한 목표지만 그림이 크지 않으면 깨진 유리그릇처럼 수많은 시스템과 조직이 파편화될 것이다. 파편화된 조직은 회사의 리소스를 잡아먹으며 디지털 혁신과 회사의 성장에 발목을 잡게 된다. 반면 큰 그림은 있으나 실천 가능한 목표가 없으면 큰 그림에 도달할 수가 없다. IT분야는 세밀하면서도 방대하기에, 둘 중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쩌면 증권사에는 실천 가능한 목표를 이해하는 동시에 큰 그림을 그리며 의사를 결정할 인력이 아닐까 싶다.

다섯째, IT산업의 흐름과 내부 사정에 귀기울인다. 현재 금융 산업의 최대 경쟁자이자 고객과 시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산업이 IT산업이다. 그들은 지배적인 자사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의 모든 행동 패턴을 읽고, 분석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플랫폼 유지 기반인 IT 인력의 성향과 그들의 행동 패턴을 잘 이해하며 요구에 발맞춰 성장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과 휴가 사용이 자유로운데도 정확한 업무성과 측정이 가능한 이유를 찾아보자.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성장의 경험들을 파악해야 한다. 이런 이해가 있어야 IT인력을 육성·유지할 수 있고, 그들을 통해 디지털 혁신을 완성할 수 있다. 어쩌면 파악하려는 내용이 이미 금융권에서 이해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배울 것은 내용보다 실행할 용기일 것이다.

가까운 미래, IT기업과 금융기업 사이에 금융시장을 놓고 한 판 승부가 벌어질 것이다. 승자는 알 수 없지만 전통을 고수하는 금융기업이 설 자리가 없을 것임은 명확한 사실이다. IT기업으로 변신한 금융기업, 금융업 진출에 성공한 IT기업, 금융업을 하는 IT기업. 그들 중 최종 승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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