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금융권을 뒤흔든 RPA, 어디까지 진화했나?

2019.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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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록(디지털데일리 기자)


“RPA는 IT사업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조직을 뒤엎는 내부 혁신 작업이기도 하다. RPA가 확장될수록 일하는 사람들은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이 고민이다.” 국내 한 시중은행의 IT기획팀장은 향후 1~2년간 확산될 금융권 RPA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반복적이면서 정형화된 대량 업무를 자동 처리하는 체계로 정의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정의는 RPA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섬뜩한 속성을 포함한다. 금융회사 CEO가 “RPA를 도입하면 인력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는 모습은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렇듯 부담을 안은 채 2019년 금융권에서 RPA는 다시 한번 진화하고 있다. 다만 RPA 사업 속성 때문에 진화 속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빠르게 또는 더디게도 느껴진다. RPA는 비용절감, 서비스의 개선, 업무시간 단축 등의 1차적 정량적 효과에서 벗어나 좀 더 복잡한 업무로, 2단계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권에선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가장 혁신적인 도구로 RPA를 재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RPA도입에 따른 후폭풍이 강력하다는 의미다.


 

이제 판단의 영역까지빨라지는 금융권 RPA 진화

전문가들은 RPA의 완성을 총 4단계로 보고 있다. 이때 4단계는 인공지능(AI) 기반의 RPA가 구현되는, 즉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이다. 아직도 갈길은 멀다.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국내 금융권의 RPA 단계별 진화 수준은 1.5단계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지만 이제 2단계에 진입했다고 봐도 좋다.

 

RPA는 우리보다 미국, 유럽 등 해외 금융 선진국에서 상대적으로 더 진화한 모델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고 보기는 이르다. 아직 해외에서도 산업별로 RPA 도입 속도는 차이가 크다. 동일 업종이라도 편차가 커 평균치를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RPA는 단순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자동화 단계를 넘어 ‘AI와의 결합’으로 이동 중이다. 이제 ‘인간의 판단’과 결합한 업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RPA기술에 인지(Cognitive), 분석(Smart Analytics) 등 AI 결합 모델이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처럼 RPA가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해 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한다.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비정형 문서처리에 AI를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앞서 AI를 활용한 감정서 심사처리 PoC(개념정의)를 진행했다.

한편 앞으로 금융권 RPA의 진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를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는다. 기존의 복잡하고 엄격한 규제를 기술적으로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각 금융 업무시스템의 독립적인 보안성을 유지해야 하고, 또한 ‘금융 망분리’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기에 RPA 프로세스를 최적화 과정이 필요하다.

 

증권사, 정보 수집·처리·저장에 RPA 활용

최근에는 금융권 중에서도 증권업계가 RPA 도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리스크 관리, 투자 은행(IB) 등에 RPA를 도입했다. 대표적인 분야인 리스크 관리 부문을 예로 들면, 로봇은 수집 작업을 담당했다. 로봇이 수집, 처리한 정보는 신규상장 종목 법인등록 번호, 상장종목 분기별 재무정보 등이다.

신한금융투자는 RPA 도입 후 약 8개월간 1만 5,000시간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KB증권도 지난 2017년 RPA를 도입해 업무 시간을 단축하고 효율성을 높였다. IB 부문과 리서치센터 부문 목차별 내용 작성, 업종별 데이터 취합과 정리, 데이터베이스 저장 등에 RPA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KB증권은 연 환산 업무 시간 기준 약 2만 5,000시간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도 올해부터 리서치본부 업무에 RPA를 도입해 업무 혁신을 추진해왔다. 현재 리서치 자료 발간에 RPA를 활용 중이며, 향후 외부 정보망 데이터 다운로드, 업데이트 업무 자동화, 리포트와 데일리 문자 발송 업무에도 도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한양증권 역시 업무 효율화, 업무 표준화, 페이퍼리스를 3대 원칙으로 업무 프로세스 혁신에 나섰다. RPA 도입을 업무 프로세스 혁신의 방법으로 보고 있는 것. 한양증권 관계자는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위해 페이퍼리스 사무환경 구축, 결재 간소화 등을 추진해 효과를 보았으며, 로봇 자동화시스템도 도입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코스콤은 조기 출근, 야간작업, 수작업이 필요한 사내 업무에 RPA를 적극 도입해 업무 시간을 단축하고 안정성을 높여왔다. 또한 국내외 59개 금융회사가 이용 중인 전산 토탈아웃소싱 서비스 파워베이스시스템(PowerBASE System) 및 금융 클라우드로 고객사 업무에 RPA를 적용할 예정이다. 시장 진출도 선언했다. 지난 8월, 글로벌 1위 RPA 솔루션 업체인 유아이패스코리아(UiPath)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RPA 시장 본격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은행권, 2020년까지 2단계 RPA 사업 추진에 총력

국내 금융권에서 RPA 사업을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시도한 업종은 은행과 보험이다. 은행권은 20년전부터 BPR(후선업무집중)센터를 비롯해 PI(프로세스혁신) 분야에 RPA를 도입해왔기에 노하우가 풍부하다. 게다가 최근 1~2년간 비대면채널 전략 확산에 나서면서 업무 자동화 수요가 높아졌다. 때마침 RPA가 등장하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열기를 뿜고 있다.

은행권을 보면, 올해부터 RPA 2단계 사업이 크게 늘고 있다. 다만 은행권은 1단계 사업을 진행하며 얻은 시행착오를 고려해 2단계 사업은 조심스럽게 추진하고 있다. 무리한 속도전을 벌이기보다 다양한 RPA 솔루션을 검토하고, 프로세스 사전 최적화를 위한 컨설팅에 집중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3월, 1단계 RPA를 오픈해 10명 이상의 인력이 투입되던 여신심사서류 이미지등록 전 업무를 RPA로 대체했다. RPA 적용 대상은 영업점과 본부 지원업무부서 일부였는데, 올 하반기 2차 사업을 통해 본부 부서 전체로 확대할 예정이다. 나아가 2020년에는 중장기 로드맵에 의해 전행 업무로 RPA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2차 사업을 통해 기업은행은 RPA 로봇 약 35개가 가능한 업무를 대상으로 검증에 나설 계획이다. 재무제표등록업무를 비롯해 내외부망연계, 보고서 작성, 로봇 컨트롤 등이 주요 사업이다.

지난해 1차 RPA 사업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신한은행은 올 하반기부터 RPA 에코(ECO) 프로젝트에 나섰다. 이는 RPA를 개별 시스템이 아닌 일종의 ‘서비스 플랫폼’으로 격상하는 것으로, 직원들이 현업 어떤 업무든 RPA 적용이 가능한 서비스 기반을 만들도록 업무 환경을 혁신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1개 부서, 44개 과제를 대상으로 RPA 프로세스 개발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신한은행은 웹서비스 등을 활용해 온디맨드 및 후선 집중형 프로세스 처리 지원도 진행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은 올해 3월, 1차 RPA를 통해 여신관리, 외환업무, 투자상품 등 총 7개 분야 10개 단위 업무를 대상으로 RPA 기반 업무 혁신을 구현했다. 이어 곧바로 2차 RPA 고도화 사업에 착수했다. 특히 전행 업무 확산뿐만 아니라 해외의 글로벌사업 부문까지 RPA 적용 대상으로 했다. 이 결과 KEB하나은행은 지난 5월 말, 연간 8만 업무 시간에 대해 RPA 수행체계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AI연계 및 글로벌 모니터링, 영업점 업무까지 RPA를 전행 확대 적용했다. 은행 측은 “총 19개 업무, 22개 프로세스에 34개 협업로봇 ‘하나봇(HANABOT)’을 투입해 연간 32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가계여신 및 기업여신, 카드 등 주요 업무에 RPA를 도입했다. 40대의 로봇을 활용해 개인여신 자동기한연기, 카드가맹점 계좌 검증, 비대면 카드심사, 기업체 휴폐업 정보 조회 등의 7개 프로세스에 적용했다. 특히 인터넷뱅킹과 고객센터, 모집인, 제휴기관 등의 다양한 채널과 연결해 실시간 심사 및 계정처리가 가능한 RPA를 구축해 RPA 도입 범위를 확장했다. 올해는 2차 사업을 통해 재무, 내부통제, 외환 등 본점 업무에 RPA를 적용하는 데 집중했다.

BNK금융그룹 계열의 부산은행은 지난해 10월, 15개 업무를 중심으로 RPA시스템 가동에 들어갔으며, 연간 7600시간 업무 단축 효과를 달성했다. 또 BNK금융그룹 계열사인 BNK캐피탈은 올해 7월말까지 ‘업무 디지털화’ 1단계를 완료했다. 국내에서는 보기드물게 캐피털업무에 특화된 업무 자동화(간소화)프로세스 혁신을 이뤄내 주목을 받았다. BNK캐피탈 역시 올해 하반기부터 2단계 전사업무를 대상으로 한 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보험업계, 업무 특성상 RPA 적용범위 확장 수월

보험업계는 보험계약(언더라이팅)을 포함한 업무 특성상 RPA가 가장 강력한 효과를 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즉 보험업무와 RPA와의 궁합이 좋다. 보험업계의 경우, 언더라이팅과 연계된 보험심사 등 관련 업무를 RPA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RPA가 각광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상당수 보험사들이 RPA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대부분 2단계 사업을 추진하는 상태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0월 RPA 도입을 본격화했으며 전체 업무 중 50여개 업무에 우선 적용해 연간 2만 4,000시간을 절약했다. 적용한 업무는 단체보험 신규가입자 추가 가입 청약 업무 등이 있다. DB손보는 올해 4월초까지 총 28개 업무에 대해 1차 RPA 시스템 구축을 완료, 가동 중이며 계약관리, 전자문서 관리, 지수 업데이트 등에 적용되고 있다. 연간 약 2만 9,000시간 절약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이미 지난해 8월 1차 사업을 통해 3개월간의 RPA 도입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접수된 아이디어 중 심사를 통해 RPA 아이디어 116건을 발굴했고, 이 중 47건에 대해 개발을 진행했다. 47개 업무에 대한 RPA 적용으로 월 평균 약 3,000여 시간을 절약했다. 잔여 69건의 아이디어 역시 현업 적용이 끝나면 RPA를 활용한 업무개선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은 신계약 언더라이팅을 비롯해 보험금 지급 심사, 퇴직연금 등 35개 업무 43개 프로세스에 RPA를 우선 적용하고 있다. 고객의 수익률 통계 산출 같은 대량 업무나 보험금 당일 지급 심사 등 반복적 업무는 RPA가 자동으로 실행하도록 구현했다. 향후 2차 사업에서는 영업 현장에서 반복적 업무 중심으로 RPA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RPA 프로젝트 성공, 업무 프로세스 파악부터 시작

지난 1, 2년간 금융권에 거세게 불었던 RPA 확산 열풍은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기술적인 것과 조직 문화적인 것,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먼저 기술적인 것은 ‘RPA와 AI의 연계’ 전략이다. AI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높아야 완전 자동화된 업무를 구현할 수 있다. 또한 조직 문화적인 문제는 ‘프로세스의 최적화’(Process Optimization)를 의미한다. 그러나 조직 업무 안에서 비효율적인 부문을 발견하고 RPA를 이용해 새롭게 프로세스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RPA 프로젝트 실패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조직 프로세스 최적화를 완벽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이에 다른 프로세스 ‘끊김’ 현상이 생겨 실패 주원인이 됐다”라고 분석한다. 앞서 지난 1차 RPA 적용때와 마찬가지로 2차 확장 단계에서도 금융기관 내 각 부서 간 협력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BNK캐피탈 RPA 도입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일반적으로 캐피탈 업무는 일반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은행 등 일반 금융업종과는 달리 간접 채널 영업 비중이 높다. 특수한 만큼 벤치마킹이 쉽지 않았는데, 회사 측은 RPA 솔루션 도입을 서두르지 않고 업무 프로세스 파악에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 즉, BNK캐피탈은 RPA 솔루션에 환상을 갖지 않았다. ‘RPA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업무 프로세스 혁신 작업을 시작했다.

실제 업무현장에서 보면, 아무리 단순한 업무라도 RPA만으로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는 프로세스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BNK캐피탈은 업무 프로세스 디지털화 과정에서 RPA가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만 RPA에게 맡겼다. 회사측은 “업무 프로세스 디지털화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RPA의 필요 기능을 활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협업과 소통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RPA 사업에 착수하기도 전에 사업부서간, 직원 간 미묘한 오해와 불신이 생길 가능성이 컸으나 현업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통해 RPA 도입과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을 공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금융권 RPA 전환 사업, 기술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단계 RPA 사업과 안착을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의 진화 뿐만이 아니다. 사람에 대해, 즉 기존 조직 문화와 업무 프로세스를 점검할 필요도 있다. 기술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 적재적소에 RPA를 도입,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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