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법규를 기계 언어로 MRR은 금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글. 김지혜(전자신문 기자)
규제 준수 비용 낮추고 접근성 높이는 MRR
날이 갈수록 금융 관련 규제가 복잡해지면서 금융기관의 규제 준수 비용이 높아지고 있다. 규제 미이행 리스크 또한 증가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를 인용한 블룸버그 통신 뉴스 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납부한 벌금 누적 액수는 3,210억 달러(약 366조2610억원)에 달한다. 연간 벌금 납부액은 한동안 하락세를 보이다 2016년 4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금융감독 기관들이 앞다퉈 미국의 엄격한 규정들을 도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MRR은 금융기업 규제 준수 비용을 낮추고 규제 접근성을 높여주는 혁신 기술로 꼽힌다.
해외 주요 금융기업과 금융감독기관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통해 자금세탁방지, 보고서 제출・관리 등에 MRR 등 레그테크 도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이하 FCA)은 자동화된 감독 및 법규준수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는 BARAC(Blockchain Technology for Algorithmic Regulation and Compliance)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FCA는 블록체인 컨소시엄 R3와 블록체인 기반 모기지론 거래내역 분상원장 시스템을 공동 개발, 금융 감독에 적용하고 있다. 가령 주택담보대출 계약 체결 시 계약원장이 실시간 금융당국으로 전달돼 금융 규제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오스트리아 규제당국은 금융기관들과 공동으로 자동 보고 인프라(이하 AuRep, Austrian Reporting Services GmbH)를 구축했다. 대부분 오스트리아 은행들은 AuRep를 사용한다. AuRep 규제 당국은 AuRep을 통해 예금, 대출 등 데이터 유형을 표준화 및 세분화하고, 민감하지 않은 정보는 자동으로 수집한다. AuRep는 은행이 입력한 데이터(Basic Cube)를 사용해 다차원의 최종 보고 형태(Smart Cube)를 만들어 낸다. 이로 인해 보고 관련 비용을 30% 절감하는 효과를 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웰스파고는 자사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플랫폼에 어센트 레그테크(Ascent Regtech)의 기술을 탑재했다. 어센트 레그테크는 AI기술을 활용해 금융 규제를 준수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기업이다. 어센트 레그테크는 자연어 처리(NLP), 머신러닝(ML) 기술을 활용한다. 가령 금융 규제 텍스트 수백 줄을 수집한 뒤 자연어 처리를 이용해 기계어로 다시 이해한다. 또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규제를 학습한다. 이 플랫폼은 증권거래위원회(SEC), 통화감독청(OCC) 등 고객 회사별로 적용되는 규제당국의 규제를 안내한다. 규제 개정 시 전후 규정 비교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 규정이나 업무 절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준다.
금융감독원 MRR 도입 전격 추진
해당 모델을 통해 규정 변경 시 업무 보고서 변경 관리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다만 용역 수행인만큼 실제 금융기관에 바로 적용하진 않고, 현재 금융기관 시스템과 유사하게 가상 환경으로 구성해 시험한다. 이와 동시에 금융기관 데이터베이스(DB)와 연계해 데이터 추출과 보고서 데이터 전송을 위한 분산원장, 오픈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적용 가능성도 검증한다.
이번 개념 검증 과정에서 AI, 블록체인 등 신기술도 적용된다. 그중 AI 기술은 보고 의무 사항을 기계가 읽을 수 있도록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연어 처리, 텍스트 추출 등에 사용된다. 이후 실행 가능 형태 코드로 전환된 보고서 양식은 금감원과 가상의 금융기관을 노드로 한 사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성해 생성된 코드를 배포한다. 배포된 코드는 금융기관 IT 시스템에서 실행되어 데이터를 추출한다. 이렇게 추출된 데이터는 오픈 API로 제출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MRR 기능이 탑재된 표준 API(특별한 기술 없이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터페이스 일종)를 금융기관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쯤 금융기관 IT시스템이 자동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된다. 금감원 MRR이 도입되면 금융기관은 보고서 작성 오류, 지연 제출 등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또 인력이 부족한 핀테크 기업의 보고서 작성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이상거래탐지(FDS)와 자금세탁방지(AML) 도입 현황
금융기관에서는 규정이나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징벌적 벌금으로 천문학적 금액이 부과된다. 또 무엇보다 금융기관 이미지에서 생명과도 같은 ‘신뢰도’가 추락하고, 최악의 경우 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외 은행들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고 규제당국의 스트레스 테스트 대응, 이상거래탐지(FDS), 자금세탁방지(AML) 모니터링 등을 위해 레그테크를 도입해왔다. 이상거래탐지에 MRR을 적용한 사례로는 영국계 홍콩·상하이 은행(HSBC)는 영국 스타트업 콴텍사(Quantexa) AI 기술을 활용해 불법 거래 감지 시스템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의 AI 소프트웨어는 전화번호, 주소, 뉴스 등 다양한 출처의 정보를 검토해 수상한 거래로 의심되는 내역을 찾는다. HSBC는 돈세탁 방지 조사 자동화를 위한 AI 스타트업 아야스디(Ayasdi)와도 제휴해 컴플라이언스 업무 일부를 자동화했다. 그 결과 AI는 사람과 동일한 분량의 의심사례를 검토하면서도, 수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합법적인 거래를 20%가량 줄이는 데 성공했다. 씨티그룹은 미국 연준의 종합자본분석(CCAR, 은행의 자본운용 방식 및 리스크 관리에 주안을 둔 건전성 감독)을 통과하기 위해 아야스디 플랫폼을 활용한다.
한편 AML 업무에 AI,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거래 모니터링 강화, 부정 거래 탐지 정확도 개선이 가능해 자금세탁 의심거래에 대한 보고 비용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 국내 은행권에서는 2018년 일부 은행 미국 지점의 내부통제 시스템 미비 등을 사유로 뉴욕 금융감독청(DFS)에서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가 발생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상호평가 등으로 준법감시에 대한 요구가 증대된 상황이다. 우리은행은 자금세탁방지 관련 조직 규모를 확대, 신한은행은 외부기관으로부터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레그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 금융관련 법규, 법령해석, 가이드라인 등 컴플라이언스 정보를 제공하는 오픈 API 등 관련 인프라 구축을 추진한다. 금융보안원은 금융권과 공동 레그테크 플랫폼을 구축, 컴플라이언스 관리자동화, 금융보안 보고서 자동 리포팅, 인텔리전스 규제 검색 및 알림, 금융보안 업무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은 외국환 거래시 금융 소비자와 은행직원 등이 외국환거래 법규를 위반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위규 외국환거래 방지시스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할 방침이다.
금융기관과 규제 당국 모두 윈윈하는 MRR
MRR을 도입하면 금융기관과 핀테크기업 규제 준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위반 시 부과될 수 있는 막대한 벌과금 회피도 잠재적 비용 절감 효과로 작용한다. 실시간 기업 리스크 관리 강화,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에 대한 예측, 불법행위 감지 기능이 강화되면서 기업 운영의 효율성과 건전성도 개선할 수 있다. 더불어 감독당국에 대한 정기·수시보고를 자동화할 수 있고, 조직문화, 직원들의 행동을 분석해 내부 통제, 불완전판매 모니터링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정확하고 효율적인 금융서비스가 가능해져 금융 소비자 보호에 집중할 수 있다.
규제당국 입장에선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레그테크 도입으로 규제당국의 자료 수집 및 방대한 양의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이 강화되어, 효과적인 규제정책 수립 및 감독의 질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시스템이기에, MRR을 포함한 전 세계 레그테크 투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년 글로벌 금융기관의 30%가 인공지능 기반 준법감시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관련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국내 은행들의 도입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머신 리더블(Machine-Readable) 방식으로 데이터 기록
핀테크는 혁신적인 데이터를 사용하고 새로운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확장했다. 그러나 데이터 보호 및 사생활 침해, 사이버 보안, 데이터 관리 등의 우려를 심화했다. MRR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편 최소화, 금융소비자/금융산업 보호다. 현재 지능화, 자동화되고 있는 금융서비스에 비해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는 사람에 많이 의존한다. 따라서 핀테크라는 사업 모형이 야기한 새로운 위험을 식별하고 관리하기 위해 금융감독도 변화된 시장에 맞는 방식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고 금융기관의 법규 준수를 유도하려면 국내 금융시장에도 MRR을 중심으로 한 레그테크 도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MRR 도입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디지털 보안 문제에 대해 대비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까? 금융감독자가 금융기관의 감독정보 보고 부담을 낮추고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한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독 보고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컴퓨터가 바로 읽을 수 있는 머신 리더블(Machine-Readable) 형식으로 제출해야 한다. 엑셀, 워드 등 인간 친화적인 데이터는 죽은 데이터다. 이제 프로그램 친화적인 데이터로 표현되어야 한다. 데이터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표준화하고 데이터 교환은 업로드(Upload)가 아닌 API로 교환돼야 한다. 또 FDS, AML 등 컴플라이언스 업무 지능화를 위해서는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데이터가 중요하다. MRR 등 레그테크 업체들이 공유된 데이터와 각종 금융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솔루션 개발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지원도 필수다. 영국 FCA가 주관하는 테크스프린트(TechSprints)와 같이 정보기술을 사용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감독자, 사용자, 기술 개발자 등이 함께 협력해 해법을 찾아가는 방안도 참고할 만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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