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금법 통과와 금융 및 블록체인 산업의 대응 방향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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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형주(사단법인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이사장, 前국회의원)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 교수는 향후 10년간의 금융시장 변화가 지난 100년간의 변화보다 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향후 금융산업은 속도와 개인화된 서비스, 그리고 유연성이 주요 역량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앞으로 블록체인 혁명에 대한 탈중앙 금융, 즉 디파이(De-Fi)의 위용이 증대됨을 의미함과 동시에 개인 간의 직접적인 금융(P2P) 등 탈중앙화 금융시스템에 대해 국제사회가 위험기반 자금세탁 방지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금법 통과에 따른 환영과 우려

지난 3월 5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이 통과되었다. 본 법안은 G20 정상회의와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 국제기구들이 자금세탁 방지 및 공중협박자금조달금지를 위한 국제기준을 제정하고, 이를 회원국들이 이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현실을 국내적으로 수용함과 동시에, 가상자산 거래의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한 법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통과된 특금법의 주요 골자를 보면, 금융회사 등이 가상자산사업자와 금융거래를 할 때 가상자산사업자의 신고의무 이행 여부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도록 하고, 가상자산사업자가 신고의무를 미이행 한 것이 확인되는 등의 경우에는 금융거래를 거절하도록 했다. 또한 자산사업자의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의 장에게 상호 및 대표자의 성명 등을 신고하지 않을 경우 영업 시 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아울러 가상자산 사업자가 불법재산 등으로 의심되는 거래 및 고액 현금거래에 대한 보고를 이행토록 하기 위해 고객별 거래내역을 분리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본 법안의 통과를 두고 시중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환영하는 쪽에서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연관 사업자들에게 제도적 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여러 측면에서 나왔다. 먼저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신고를 하려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ISMS 인증 요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또 금융위 산하의 금융정보분석원(KoFIU)이 정하는 실명계좌 면제 대상 사업을 제외하고는 원칙상 실명계좌 개설이 필수요건이 됨으로써 사실상 금융위원회와 은행이 주도권을 쥐고 사전검열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암호화폐 관련 산업 대부분이 특금법 적용 대상임을 감안할 때, 대통령령이 정해지기 전에 금융정보분석원의 실명계좌 면제 기준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전 세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2019년 6월 23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발표한 가상자산 취급업자(VASP) 대상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Guidance for a RISK-BASED Approach to Virtual Asset and 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s>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향후 제재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레그테크와 블록체인 업계의 과제

특금법의 시행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금융기관들은 금융 규제대응 업무의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과 같은 최신 IT 기술을 활용하여 금융 규제에 대응하는 ‘레그테크 (RegTech: Regulatory Technolog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이래 금융 규제 미준수로 인한 전 세계 금융기관의 벌금 지불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지사도 벌금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예로, 2014년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은 미국의 제재 대상국인 이란과 거래한 사실로 한화 1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 받았다. 라트비아의 ABLV은행은 ‘북한 탄도미사일 자금조달 또는 수출을 포함한 불법적인 금융활동에 연루’되었다는 명목으로 미국 금융시스템 접근 차단이라는 제재와 더불어 파산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NH농협은행의 뉴욕지점이 2017년 뉴욕금융청(DFS)으로부터 자금세탁 방지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100억대 과태료를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를 기점으로 신한, 하나 등 주요 미국 진출 은행들도 미국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정기 검사를 받고 있다.

그런 만큼 해외영업을 확대하는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자금세탁 방지 이슈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JP 모건의 경우 준법인력이 1만 3천명 수준인 데 비해,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준법업무를 1년 이상 한 유경험자가 많지 않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가상계좌 관리시스템(VAMS)과 인공지능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기술, 해킹 혐의거래 분석 시스템(AML-FDS) 등을 점검하는 한편, 자금이행 경로를 밝히는 트래블 룰(Travel Rule) 이행을 위해 업계의 컨센서스를 정밀하게 제도화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에 특화된 블랙리스트 지갑(Wallet) 검색 및 경보 제공, 가상자산 유통경로 추적 및 분석 시스템과 더불어 혐의 거래 분석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자금세탁 혐의 거래를 정확하게 추출하여 보고하는 솔루션이 개발되고 있다.

 

ICO에서 STO로 진화

특금법의 통과로 인해 한국에서도 자산의 디지털화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특히 코인 발행을 통한 조기 자금 확보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ICO(Initial Coin Offering, 가상화폐를 판매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로부터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증권형토큰공개로 회사 자산을 기반으로 주식처럼 가상화폐를 발행하는 것)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ICO 프로젝트의 경우 평균 1.22년의 생존기간과 8%에 불과한 생존율을 보여 명맥을 이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국내를 포함한 대부분의 블록체인 기업들은 IEO(Initial Exchange Offering, 암호화폐를 개발한 곳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ICO를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대행하는 것)로 돌아선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10억 원 이하의 자금을 모으는 형편이어서 원활하지 않은 상태이다. IEO는 코인의 거래소 상장을 통한 자금 모금 방법으로 확인된 투자자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은 중소 거래소의 난립으로 인해 거래소에 상장했다 하더라도 좋은 프로젝트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특금법의 통과로 가상자산 취급 사업자들의 기준과 규모가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커진다면 투자자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이후 대기업의 블록체인 관련 기술 개발은 대부분 코인이나 토큰의 발행보다는 공공부문에 적용할 SI를 위한 허가형 블록체인이나 자체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개선 및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ICO나 IEO를 통한 자금 확보가 어려워짐과 동시에 국내 거래소의 국제적 위상도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격화되는 블록체인 컨소시엄 경쟁

블록체인 플랫폼 경쟁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그중 가장 진척도가 높은 것은 분산원장기술에 관한 컨소시엄이다. 우선 미국 IT기업 R3사의 R3 컨소시엄이 대표적이다. R3 CEV(Crypto, Exchange and Venture Practice)는 결제, 회사채, 보험 등 8개 금융 분야에 적용할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15년 9월 골드만삭스 등 9개 금융기관이 모여 결성한 컨소시엄이다.

R3 CEV는 2016년 분산원장 기술을 적용, 네트워크 확장이 쉽고 빠르며 유지관리 비용이 저렴한 코다(Corda)를 개발했다. R3사는 기본적인 시스템 설계 및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컨소시엄 회원사는 자사 응용 프로그램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에 연결해 시스템을 테스트했다. 국내에서도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이 가입해 고객확인(CDD와 EDD) 정보를 R3 분산원장 기술인 코다로 저장 관리하는 프로젝트에 성공한 바 있다.

이로써 고객이 거래 은행마다 일일이 고객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했다.

그 다음은 리눅스재단이 추진하는 하이퍼레저(Hyperledger) 컨소시엄이다. 금융회사 및 비금융 IT 기업 등 100여 개 기업이 모여 범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을 연구 개발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예탁결제원과 코인플러그, 삼성SDS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SBI 금융그룹이 주도하는 SBI 핀테크 컨소시엄이 아시아에서 활용 가능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리플과 코인플러그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 또한 완샹그룹이 독자적으로 주도하는 차이나레저(Chainaledger) 컨소시엄이 중국 11개 대형 금융회사의 참여 속에서 진행 중이다.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커스터디 서비스와 디파이(De-fi)의 성장

한편, 이번 특금법 개정안은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 등 전통 금융회사들이 가상자산 운용대행이나 가상자산 커스터디(custody, 가상자산 및 개인열쇠 수탁)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가상자산 커스터디가 필요한 이유로는 거래소의 해킹 방지, 투자자 보호, 투자 리스크 감소 등을 꼽을 수 있다.

먼저 해외 사례를 보자. 백트(Bakkt)는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 그룹인 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지(ICE)가 모회사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타벅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함께 만든 거래소다. 지난해 9월 백트는 비트코인 선물거래 서비스를 출시한 데 이어 커스터디 서비스를 시작했다.

커스터디 서비스의 경우 비트코인 투자회사인 판테라 캐피털과 갤럭시디지털, 가상자산 브로커리지 업체 타고미가 초기 고객으로 등록했으며, 현재 일반 기관투자자들로 대상을 확대했다. 더 나아가 올해 상반기에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디지털자산 통합 플랫폼 ‘백트앱’을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용자가 암호화폐, 포인트, 게임 토큰 등 모든 종류의 디지털 자산을 통합·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 목표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 피델리티는 2018년 3월 초 디지털 자산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피델리티디지털자산홀딩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비트코인 거래와 커스터디 서비스에 집중해왔다. 헤지펀드, 패밀리오피스, 연기금재단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주 고객이다.

일본 최대 투자은행 노무라홀딩스도 자회사 코마이누를 통해 커스터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글로벌 금융그룹 ING와 골드만삭스도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일찍이 2017년 12월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고, 지난 1월 13일에는 비트코인 선물 옵션 상품을 출시했다.

이렇듯 글로벌 전통 금융기관들의 가상자산 거래 도입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이 어느 정도 신뢰를 얻고 있으며 대체자산으로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특금법 개정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가상자산을 정의한 것은 금융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도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가상자산 서비스가 폭넓게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KB국민은행이 가상자산 관리 서비스 ‘KBDAC’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 심사대기 중이다.

이에 앞서 금융위원회에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 수요조사를 접수했다. DAC는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Digital Asset Custody)의 약자로, 거래, 수탁, 장외거래(OTC), 자문, 투자 운용 등 가상자산 전반에 걸친 포괄적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KB국민은행은 2019년 6월 블록체인 기술기업 아톰릭스랩과 블록체인 기반 기술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톰릭스랩이 자체 연구개발한 커스터디 기술과 KB국민은행의 고객신원확인(KYC)‧자금세탁방지(AML) 운영 노하우가 결합된 형태로, 암호화폐 뿐 아니라 부동산‧미술품이나 저작권‧라이센스 등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디지털화된 유‧무형 자산(Asset Tokenization)을 안전하게 보관‧관리하는 게 목표다. 더 나아가 두 기업은 스마트 컨트랙트(블록체인 기반 조건부 자동계약 체결) 등의 개발도 협력하기로 했다.

이러한 국내 금융권의 움직임은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커스터디 서비스 출시와도 관련 있다. 커스터디 서비스는 사실상 기존 제도권 금융이 보유한 상품이었는데, 앞으로 가상자산이 대체자산으로서 공고한 입지를 다지게 된다면 이미 커스터디 플랫폼을 갖춘 가상자산 거래소에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국의 코인베이스(Coinbase)나 비트고(BitGo) 그리고 한국에서는 업비트, 빗썸, 헥슬란트 등이 커스터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현재 글로벌 가상자산 커스터디 솔루션은 유럽이 52%, 미국이 43%로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아시아의 경우 5% 정도에 불과한 상황으로, 국내 금융업계의 성장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중앙집중화된 기존 금융전산 시스템을 분산하기 위해서는 금융규제 완화, 금융기관의 시스템 전환 등이 전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금융산업 전반에 적용되고 실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체의 공급망 관리, 의료 서비스, 부동산 등 기타 산업에서 블록체인을 선제적으로 도입되면서 금융업에 적용·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비인크립토(Beincrypto)에 의하면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기 전인 2020년 1월 30일 기준으로 탈중앙화 금융시스템을 뜻하는 디파이(De-Fi) 락업(Lock-up, 일정기간 암호화폐를 예치하면 원금과 함께 리워드를 제공하는 서비스) 규모가 8억 5,2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디파이가 신생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대출 등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파이에 대한 국내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일본의 암호화폐 사업자들이 증권회사 출신들이 많다는 점을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암호화폐 관련 사업과 디파이에 대한 금융인들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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