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미피케이션을 활용한 증권 투자 서비스 개발 전략
글. 황석주 팀장(코스콤 미래사업TF팀)
2013년 <월스트리트 앤 테크놀로지>에서 “트레이딩 기술에 있어 혁신은 어디에 있는가?(Where is the innovation in Trading Technology?)”라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중략)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산업은 점진적인 변화들만 만들어왔고 큰 폭의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패널들과 청중들을 향해 “정말 멋진 알고리즘이나 시장 구조의 변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입니까?”며 몰아붙였다. “변화에 대한 용기는 어디에서 생겨납니까?” REDI(1) 를 전략적으로 독자적인 금융 기술 회사로 성장시켜 나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Nangalia는 자신의 회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말고 나가서 그 틀을 깨라고 독려하면서, “여기서 남쪽으로 30블록 떨어진 곳에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fintech 스타트업들이 있는 남쪽 맨하탄을 가리켰다.”
해외 주류 투자은행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위협을 느낀 것이 2013년이니,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시점에도 한국의 증권 투자 서비스에서 핀테크의 성장을 보기 어렵다는 점은 많은 아쉬움을 만든다.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2000년대 초반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HTS가 웹과 모바일로 전화 되었으나 사용자의 경험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 결과 증권 투자자 주류 세대는 40대에서 50대, 60대로 고령화되고 있고, 20대, 30대 고객을 어떻게 끌고 올 것인지는 증권 산업에 있어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 디자인 요소를 사용해 게임이 아닌 환경에서 사용자의 몰입을 강화하고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gamification is defined with the use of game design elements in the non-game environment to encourage desired behavior and to enhance the participants’ engagement)”(2) 으로 정의된다. 본능적으로 놀이를 좋아하고, 만들어온 인류의 유전적 특질을 이용해 실생활에서도 사용자에게서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고 몰입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게이미피케이션이 지향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에 있어서도 게이미피케이션은 서비스 기획 의도에 맞게 사용자의 동선을 만들고, 몰입 상태로 오랫동안 머물러있게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특히,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구독형 경제가 지배적인 20~30대 고객을 유인할 때, 게이미피케이션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서비스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이미피케이션의 디자인의 요소는 무엇이고, 증권 투자 서비스 산업에서 사용자에게 만들어주는 투자 경험에 있어 어떻게 게이미피케이션을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게임의 역사와 투자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동물의 복사뼈를 이용해 주사위 게임과 유사한 게임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3) 보드게임은 고대 이집트의 Senet, 공놀이는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의 Episkyros를 그 원형으로 보는데, 게임적 요소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게임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도박의 역사이기도 하다. 도박의 영어 단어인 ‘Gamble’의 어원 자체가 ‘게임을 하다’는 뜻의 ‘gamel’에서 왔다고 한다. 도박의 한자말인 賭(도)는 조개 패(貝)에 사람 자(者)가 합쳐진 것으로 옛날 사람들이 즐기던 보드게임이라고 보면 되겠다.
투자(投資)라는 말은 흥미로운데, 한자말 投(투)는 ‘던지다’라는 뜻이고, 資(자)에는 조개 패(貝)가 있어, 한자로만 보면 역시나 도박이나 보드게임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한편, 투자의 영어 단어인 ‘invest’는 라틴어 ‘치장하다, 옷을 입다’라는 뜻의 ‘investire’를 어원으로 하며, 이는 이윤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은유이다. 어원으로만 봤을 때 동양에서는 투자를 게임과 연결시키는 정서를 찾아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사람들은 오락을 위해 투자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Dorn과 Sengmuller는 독일의 1,300명 투자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사람들은 저축이나 위험관리, 단기 이익 외에도 단순히 오락을 위해 투자를 한다. 어떤 투자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거래를 하고, 거래비용을 감안했을 때 낮은 수익률을 내는 것은 오락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5)
이를 볼 때 증권 투자 서비스에서 게이미피케이션을 이용한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것은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게이미피케이션 설계
TED 강연을 통해 ‘게이미피케이션’의 개념을 전파한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의 본질적 특징을 아래 네 가지로 정리했다.(6)
게이미피케이션은 이러한 게임의 본질적 특징을 이용해 플레이어를 몰입 상태로 만드는 도구가 되는데, 이때 효과적인 게이미피케이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가상현실 속에서 현실에 대한 은유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1) 플레이어의 유형과 성장
영국의 게임학자인 리처드 버틀은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유형을 탐험가(explorer), 성취가(achiever), 사교가(socialiser), 킬러(killer) 네 가지로 구분했다. (7) 탐험가는 경쟁보다는 경험 자체가 목표이며, 새로운 경험을 발견하는데 있어 만족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반면 성취가는 경쟁 지향적이며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교가는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해당하는데 다른 플레이어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킬러형은 소수의 플레이어로 다른 플레이어를 압도하고 파괴하는데 만족감을 느낀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를 성장-발전하는 존재로 상정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숙련 될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조정하거나 보상 체계를 마련한다. 게이브 지커맨이 상술한 글에서는 플레이어의 성장 경로를 “초심자→문제해결자→숙련가→마스터→선지자”로 설명하고 있으며, 모든 플레이어가 이런 경로로 성장해야만 한다는 오류를 갖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있다. 플레이어는 어느 단계에서라도 멈출 수 있으며, 각 단계는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는 충분한 즐거움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플레이어의 유형과 성장 경로에 대한 연구는 증권 시장에서 서비스하는 시스템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권 서비스는 네덜란드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생긴 이래로 고객의 주문을 위탁하고 거래 시장에 중개하는 서비스로 출발했고, 고객은 대부분 고액 자산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2000년에 키움증권과 같은 온라인증권회사가 다수 생겨나게 되면서 소액의 개인투자자 그룹이 무시할 수 없는 고객층으로 대두되었다. 이는 인터넷 환경이 발달하면서 정보의 접근성이 좋아지고 HTS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이 동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객의 유형과 성장 경로에 따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개인화된 마케팅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증권 서비스에서는 고객의 위험선호도에 따라 고객을 분류하고 상품을 설계한다. 이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공급자 관점의 분류인데, 마케팅을 위해서는 고객의 성향과 숙련도에 따라 새롭게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유형을 분류하는 기준 역시 원용해볼 가치가 있다.
플레이어의 성장 경로를 설계하는 요소들로, 초보자 적응(onboarding) 프로그램, 레벨 디자인, 순위표 등을 들 수 있다.
2) 은유로서의 공간
게임에서 공간이란 특정한 규칙들이 동작하는 가상의 현실이다. 게임 공간은 일정 정도 현실에 대한 은유를 포함하고 있어 플레이어가 가상의 공간임을 인지함에도 기꺼이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
증권 투자 서비스에 있어서는 ‘증권 시장’이라는 공간을 투자자들에게 인지시킬 때 만들어줄 공간에 대한 은유를 정의해야 한다. 가령 기존의 트레이딩 시스템은 두개의 모니터에 분할하여 배열하는 큰 크기의 차트, 복잡한 주문 화면,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진 종목화면과 뉴스 등 ‘전문가를 위한 시스템’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사용자가 이런 트레이딩 시스템을 실행할 때면, 전문가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낯선 공간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증권 시장은 보드게임과 같은 게임판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롤플레잉 게임의 던전과 같이 플레이어가 탐험하는 탐험공간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공간을 정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공간의 특성을 정의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 기존에 사용되는 업종이나 섹터와 같은 기계적인 구분은 사라지고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그룹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변동성 그룹에 따라 안전지대-중립지대-위험지대로 구분할 수 있고, 종목의 특성에 따라 전기-놀이터-일상 등 다양한 테마를 적용할 수도 있다.
3) 보상과 동기유발
다니엘 핑크는 저서 <드라이브>에서 ‘당근과 채찍’같은 외적 동기유발 장치보다 ‘자율성(Autonomy), 목적성(Purpose), 숙련욕구(Mastery)’ 등 인간의 내적 동기 유발 장치가 창의적인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가 컴퓨터 게임을 할 때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 가진 특징이 내적 동기 유발 장치와 유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8)
이러한 내적 동기유발 장치는 참여자들에게 ‘몰입(flow)’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데, 몰입 상태란 ‘게임 중독’과 같이 심각한 병리적 증세가 아니라 ‘타 조건이 동일할 때 선택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가벼운 흥분 상태이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이 아닌 상품과 서비스에 이러한 게임적 요소를 도입해 고객의 몰입 상태를 이끌어내고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또한, 우리는 흔히 ‘당근과 채찍’으로 인간의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의 심리학자 레오 크레스피는 ‘미로 속의 쥐’ 실험을 통해 보상의 크기가 클수록 쥐의 달리기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알아냈다. 반대로 보상의 크기가 작을수록 쥐는 느리게 달렸다. (9) 적절한 보상으로 긍정적 행동을 강화하는 방법은 일의 수행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이미피케이션에서는 적절한 보상을 통해 참여자의 동기유발 상태를 강화(Reinforcement)시키는 장치 역시 중요하다. 게이브 지커맨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보상을 주는 방법과 보상을 주는 시기를 특정하지 않으면서 보상에 대한 기대를 유지하는 방법을 통해 이런 동기유발 강화를 얻어낼 수 있다고 본다.(10) 하지만, 한번 보상에 대한 기대가 생기게 되면 끊임없이 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 역시 생기게 되므로, 보상에만 의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플레이어에게 보상으로 줄 수 있는 점수 시스템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제시 셸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점수 시스템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11)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는 의미
이상 대략적으로 게이미피케이션과 게임디자인 요소에서 증권 투자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리해봤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상세한 디자인과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게이미피케이션이 주는 중요한 의미는 서비스의 제공자 입장에서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의 입장에서 서비스를 기획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객이 더욱 쉽고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험이 재미있고 즐겁게, 그래서 다시 찾아오고 오랫동안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게이미피케이션이며, 이는 앞으로 증권 투자 서비스에 있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1) REDI는 1992년에 설립된 트레이딩 플랫폼 회사로, 2000년에 골드만삭스에 인수되었다. 2012년에 스핀오프한 이후 2013년에는 헤지펀드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트레이딩 시스템으로 알려졌다. 2017년 로이터(현 Refinitiv)에 인수되었다.
(2) Sebastian Deterding, Dan Dixon, Rilla Khaled, Lennart Nacke, “From Game Design Elements to Gamefulness: Defining “Gamification” ”, Conference: Proceedings of the 15th International Academic MindTrek Conference: Envisioning Future Media Environments
(3) Henry C. Koerper, Nancy A. Whitney-Desautels, “Astragalus Bones: Artifacts Or Ecofacts?”, PCAS Quarterly,35(2&3),Spring and Summer 1999
(4) Jon Radoff, http://radoff.com/blog/2010/05/24/history-social-games/
(5) Anne Jones Dorn, Daniel Dorn, Paul Sengmuller, “Why do people trade?”, Journal of Applied Finance (Formerly Financial Practice and Education), Vol. 18, No. 2, 2008
(6) 제인 맥고니걸, “누구나 게임을 한다”, 알에이치코리아
(7) Richard Bartle, “HEARTS, CLUBS, DIAMONDS, SPADES: PLAYERS WHO SUIT MUDS”, 이런 구분은 독립적인 것은 아니고 한 플레이어가 다양한 유형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8) 혹은, 게임이 Maslow의 인간 욕구 5단계 중에서 생리적 욕구, 안정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박진희, 김소아, 전인식, “학생들의 게임 이용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매슬로우 욕구 이론을 중심으로 -”,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018 참조
(9) Crespi, Leo P. (1942). “Quantitative Variation of Incentive and Performance in the White Rat”. The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
(10) Gabe Zichermann, “Gamification by Design: Implementing Game Mechanics in Web and Mobile Apps
(11) Jesse Schell, “The art of game design”
코스콤 큐래이션 박스 #핀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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