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미중간 디지털 화폐 전쟁
글. 박승찬 소장(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지난 6월 창립 70주년을 맞이해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향후 중앙은행의 비전을 담은 ‘BOK 2030’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을 전담할 디지털 혁신실을 신설하고, 부총재보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관련 업무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7월 디지털 화폐설계 및 구현기술 검토 등 CBDC 기반업무를 시작으로 8월에는 향후 디지털 원화 업무분석 및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외부 컨설팅을 수행하는 등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아젠다로 부상한 CBDC
한은은 올해 3월부터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포함한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은이 공개한 ‘CBDC 파일럿 시스템 컨설팅 사업’ 제안 요청서에는 한은이 이번 연구를 통해 테스트해 보려는 CBDC 구조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은 대내외 여건을 고려하고, 기술적·법률적 내용을 종합 검토하여 파일럿 시스템 구축을 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CBDC와 같은 디지털 화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한은의 입장이 왜 바뀐 것일까?
중국을 선두로 미국 및 유럽, 일본 등 글로벌 금융 국가들의 CBDC 추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지난 10월 14일 화상회의로 진행된 제4차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회의에서 CBDC 논의 및 전 세계 중앙은행의 80%가 CBDC 연구를 진행하는 등 디지털 화폐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아젠다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 화폐를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시장가격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 등 민간 가상화폐 및 암호화폐와는 완전히 다르다.
디지털 위안화, ‘DCEP’ 란?
디지털 화폐의 선두국가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3경(京)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 최대의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를 기반으로 디지털 화폐의 리딩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화폐발행을 국가 아젠다로 삼아 CBDC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16년 12월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에 디지털 화폐연구소를 설립해 이른바, 디지털 위안화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전자화폐 관련 특허만 100여 개를 출원한 상태다.
중국의 디지털 화폐인 DCEP는 현금과 기능이 동일한 법정화폐로 중국 내 어느 지불주체도 거절할 수 없는 전자결제수단을 뜻한다. 중국정부는 향후 DCEP가 본원통화(M0)를 대체해 미래 글로벌 디지털 화폐의 핵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키우겠다는 것이다. DCEP는 2단계 복층구조의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형태로 중앙은행이 직접 일반 시민들에게 DCEP를 발행하지 않고, 먼저 중국공상은행, 중국은행, 농업은행, 중국건설은행 등 상업은행에 먼저 DCEP를 발행하고 난 뒤 상업은행이 다시 DCEP를 시민들의 디지털 지갑에 보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중국 내 각 상업은행들은 100% 준비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DCEP를 제공할 수 있다. 이미 중국 4대 상업은행과 3대 통신사(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공동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결제기능 테스트도 완료한 상태이다.
DCEP vs Libra 정면 격돌
중국의 DCEP에 맞서 미국정부 보다 민간기업인 페이스북이 먼저 나섰다. 2019년 10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우버, 소포티 파이(Spotify), 페이유 등 22개 창립 회원사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리브라 공동체(Libra Association)’를 출범시켰다. 리브라는 블록체인 기술기반 글로벌 디지털 암호화폐로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나 손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특히, 기존 비트코인 등과 같은 암호화폐와는 다르게 실물자산을 담보로 연동시킴으로써 통화로서의 신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전 세계 24억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을 통해 리브라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장점과 거래 및 송금 등 비용의 절감효과 및 효율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리브라와 같은 디지털 암호화폐의 규모가 커지면 미국의 종이 달러패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리브라 공동체’의 근거지가 스위스 제네바인 것은 미국의 금융규제를 우회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리브라는 실체도 없고, 신뢰성도 부족하다고 평가’ 하자 정치권은 더욱 신중한 자세로 접근했다.
이러한 틈을 중국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2019년 10월 시진핑 주석은 블록체인을 핵심기술로 활용해 디지털 화폐 발행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하며, 중국 DCEP 실용화를 더욱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위안화’를 미래의 대항마로
DCEP 발행을 통해 중국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크게 3가지 의도로 집약된다. 첫째, 위쳇페이나 알리페이 등 민간 회사별로 난립했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정부 주도로 재통합하겠다는 의도이다. 특히, 알리페이와 위쳇페이가 독점하고 있는 디지털 지급결제 시장의 영향력이 너무 커져 이에 대한 우려와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알리페이(2020년 기준 약 55%)와 위쳇페이(약 40%)의 두 지급결제방식이 전체 시장의 약 9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중국 디지털 결제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해 주요 상업은행에 배분하고, 개인은 은행 계좌를 통해 디지털 화폐를 자유롭게 인출, 사용하게 함으로써 민간주도의 모바일 결제시장을 정부통제 하에 두겠다는 야심이다. 현재 기업생태계 별로 위쳇페이 혹은 알리페이 등에 따라 모바일 결제수단을 선별적으로 거절할 수 있지만, DCEP는 중국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다. 또한 비행기, 지하실, 산간 시골지방 등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도 스마트폰에 전기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꺼져가는 일대일로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위안화 국제화를 디지털 화폐 표준화를 통해 새롭게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해외에서도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일대일로 연선 국가를 중심으로 유통시켜 중국이 기축 통화국의 핵심적 지위를 얻으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한 장의 원가 40센트밖에 되지 않는 100달러짜리 지폐에 대한 지배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다.
셋째, 미국 등 기타 선진국들보다 먼저 디지털 화폐를 상용화하고, 미래의 금융테크 시장을 선점하여 글로벌 금융시장을 리드해 나감으로써 중국 디지털 경제의 근간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도이다. 중국의 이러한 공격적인 행보에 금융선진국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2020년 7월 3일부터 디지털 화폐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발표했고, 유럽 중앙은행도 유로화 체인을 중심으로 CBDC 연구를 본격화했다. 디지털 화폐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금융 선진그룹간 전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화폐를 둘러싼 미중간 전략경쟁의 서막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출발이 늦은 미국은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인 페이스북이 먼저 2019년 ‘리브라’ 전자화폐 프로젝트를 공식화하며 미중간 디지털 화폐전쟁에 불을 지폈다. 2020년 1월 일본·유럽·영국·스웨덴·스위스·캐나다 등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 공동으로 디지털 통화 연구그룹을 결성했으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참여하지 않았다. 디지털 화폐 발행 계획이 없다는 미국이 앞서가는 중국의 미래 디지털 화폐혁신에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2020년 2월 중국에 적대적인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미국 주도로 디지털 화폐 발행의 필요성과 연구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2020년 9월 선전, 쑤저우, 슝안신구 등 일부 도시에서 시범적으로 사용된 DCEP가 베이징과 톈진, 상하이, 충칭 등 30여 곳의 대도시로 확대되자, 소극적이던 미국도 본격적인 디지털 달러 연구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디지털 달러에 대한 갑론을박을 진행하는 동안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10월 23일 디지털 위안화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인민은행법」 개정 초안을 발표하는 등 더욱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인민은행은 상업은행의 디지털 지갑을 통해 추첨방식으로 선정된 광둥성 선전 5만 명의 주민들에게 각각 200위안(34,000원)의 디지털 위안화를 배포했고, 대형마트, 식당, 약국 등 약 4,000여 개 상점에서 현금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연준은 기존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통화 연구그룹에 뒤늦게 합류했고, ‘디지털 달러재단(Digital Dollar Foundation)’ 라는 싱크탱크 조직까지 설립했다. 또한 코로나19 정부지원금의 디지털 달러 지급 및 디지털 달러발행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년 전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미 하원 청문회에서 ‘중국의 디지털 화폐 시장주도가 향후 미 달러패권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현실화’되면서 총성 없는 미중간 디지털 화폐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코로나19 재확산이 가속화되면서 디지털 화폐 필요성에 탄력이 붙는 분위기이다.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향후 현금지폐 대신 디지털 화폐 시대가 더욱 빨리 도래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이 美 대통령에 당선되고 향후 미중간 디지털 화폐전쟁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달러패권은 미국을 세계 강대국으로 만들었던 1등 공신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구동성으로 디지털 위안화 추격을 위한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분열된 동맹국가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 디지털 화폐 표준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다. 이미 G20은 IMF, 세계은행,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금융기구와 공동으로 CBDC에 대한 국제표준을 만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바이든 당선자는 지금의 느슨한 유럽과 일본 등 국가와의 동맹관계를 재구축하며, CBDC 국제표준을 선도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디지털 화폐와 시장전망
문제는 한국이다. 2020년 5월 중국 양회 때 한국, 중국, 일본, 홍콩 4개 지역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를 만들자는 의견을 전인대 위원들이 제안한 바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들어가서 보면 실질적으로는 중국정부의 생각을 대신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디지털 화폐 연구 출발이 늦은 한국도 부랴부랴 IMF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 연구그룹에 들어가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했지만,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위안화 거래중심지(위안화 허브)를 지향해왔기 때문에 중국의 디지털위안화 국제화의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디지털 달러와 디지털 위안화를 두고 벌이는 미중간 패권경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을 강요당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은이 추진하고 있는 컨설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컨설팅 사업에서는 CBDC 업무 과정 및 양식을 설계하고, 내년에 추진할 CBDC 시험 체계 구축 사업의 세부 실행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3단계에 해당하는 CBDC 시험 체계는 ‘제한된 환경’에서 CBDC 시스템의 정상 동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CBDC의 발행·환수 관련 업무는 한은이 담당하고, 유통 업무 등은 민간기관이 맡는 민관 협업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설계될 예정이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내부 유통실험을 통해 디지털화폐 유통의 강점과 단점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CBDC는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금융 포용성을 높이고자 시범 발행을 추진했으나 최근에는 스웨덴, 중국 등이 현금 이용이 감소하면서 민간 디지털화폐 출현 등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발행 준비에 나섰다. 올해 1월에는 스웨덴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스위스 등 6개국 중앙은행이 CBDC 연구그룹을 구성했다.
여전히 현금 수요가 존재하고, 경쟁적인 지급서비스 시장 등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당장에CBDC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지급결제 환경에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한은의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금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 거라 예측하는 지금, 남은 과제는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디지털 화폐를 이용하기 위해 안정적인 사용 환경을 갖출 채비를 서두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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