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보은행(Information Bank)이 한국 자본시장에 주는 시사점

202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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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준 교수(투이컨설팅)

얼마전부터 언론보도에서 유독 ‘마이데이터’에 대한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카드사, 보험사, 증권사, 통신사 등에 흩어져 있는 개인 금융정보를 통합하여 한 곳에서 관리하는 개념으로 데이터를 ‘물’에 비유한다면 마이데이터는 여러 곳에서 흘러온 물이 하나로 합쳐져 흐르는 ‘수로’(水路)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Bernard Stiegler)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기술을 매개로 기록되어 왔으며 인류는 기술과 하나로 합쳐진 ‘후천성 계통발생(epiphylogenesis)’ 형태로 진화한다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결여의 존재이며 기술적 보충을 통해 기존의 한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은 데이터 활용에 대한 사용자들의 욕망과 결여를 충족시켜주는 통합적인 기술적 도구이다.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대규모 스트리밍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마이데이터 시대가 본격화되면 금융과 비금융 데이터, 생활 정보를 연결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개인에게 맞춤화 된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중계기관 정보은행의 등장

마이데이터 시대에서 개인은 자신의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인생활에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바쁜 개인이 여러 기업·기관과 일일이 계약을 체결하면서 데이터 제공 동의를 하기 어렵고, 자신이 만든 데이터를 다른 기관에 판매할 만한 능력도 부족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보이용신용은행(情報利用信用銀行制度) 개념인 정보은행(Information Bank)이 등장했다.

정보은행은 바쁜 개인을 대신해서 개인 데이터를 모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기업·기관 등에 개인의 데이터를 대신 제공하고 대가로 받은 수수료 중 일부를 개인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중계기관이다. 데이터 중계기관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데이터 취급기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소비자들이 가질 수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정보은행은 현금이나 귀금속이 아닌 개인의 데이터를 예치하고 이를 제 3자에게 대출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개인의 정보를 제공받은 기업과 기관은 이를 자신의 업무나 비즈니스에 활용하여 이익을 창출할 수 있고 이중 일부를 금전 또는 다른 인센티브 형태로 개인에게 환원하게 된다. 정보은행을 통해 개인은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기업도 비즈니스에 필요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건전한 데이터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를 하게 되는 구조다.

 

EU와 일본의 정보은행 동향

데이터 활용능력이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됨에 따라 해외에서도 개인정보 활용을 통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EU는 2018년에 발효한 PSD2(Payment Service Directive Revised)를 통해 금융의 개인 데이터는 개인이 선택한 제 3자를 통해 다양한 금융 및 생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EU의 PSD2(the secondPayment Service Directive)는 정보 주체의 ‘정보이동권’을 근거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 데이터의 활용과 유통을 촉진하는 마이데이터 정책으로 전 세계 오픈뱅킹 정책의 매뉴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결과로 바클레이(Barclays), HSBC 등 메이저 은행이 계좌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마이데이터 플랫폼 사업자인 영국의 디지미(Digi.me)는 금융(HSBC, CITI, ING 등), 소셜(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트위터 등), 의료(영국 NHS 등), 헬스케어(구글핏, 핏빗 등), 엔터테인먼트(유튜브,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분야 기업들과 제휴를 통해 개인의 다양한 정보를 수집·관리·활용하는 플랫폼 사업자이다. 사용자는 디지미를 통해 소셜미디어 분석, 재무관리, 질병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관리하고 싶은 정보를 취합하며, 디지미가 제휴한 앱을 기반으로 여러가지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PSD2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면 정보은행은 일본에서 생성된 개념이다. 일본 총무성은 2018년 6월에 정보은행 사업자를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2018년 12월부터 정보은행 사업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개인을 위한 금융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를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EU의 PSD2보다는 진일보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통해 개인정보 유통을 허용하고, 관민 데이터 활용 추진 기본법, 차세대 의료기반법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2019년 10월에는 정보은행 인증제도의 특성에 관한 검토 회의를 거쳐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이 담긴 ‘정보은행의 사업자 인증에 관한 지침 2.0 버전(情報信託機能の認定に係る指針ver2.0)’을 발표하였다. 일본에서는 미쓰비시UFJ 신탁은행의 ‘디프라임’, 페리카포인트마케팅의 ‘와타시포스트’, 제이스코어(J.Score), 주부전력(中部電力株式会社)의 지역형 정보은행 서비스 ‘마인리’(MINLY), 마이데이터인텔리전스의 ‘MEY’, MILIZE의 ‘보험데이터뱅크서비스’(Insurance data bank service) 등 7개 기업이 정보은행 인정을 받고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 중에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UFJ 신탁은행(三菱UFJ信託銀行)은 2021년 3월, 정보은행인 ‘DPRIME(디프라임)’을 정식 오픈하였다. DPRIME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용자의 얼굴인식을 통해 신원확인을 하는 ‘LIQUID eKYC’ 를 도입하여 이용자 편리성은 물론 집계 데이터의 신뢰도를 향상시켰다. DPRIME의 주요 수익모델은 중계수수료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유료로 제공하고 정보를 제공한 개인들에게 중계수수료를 제외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DPRIME은 2021년 7월 1일, 전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나카타 히데토시를 브랜드 대사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16년 11월, 일본 미즈호 은행와 소프트뱅크는 자본금 100억 엔 규모의 핀테크 기업 J.Score를 설립하였다. J.Score는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여 자체 신용평가시스템인 ‘AI Score Lending’ 시스템을 2017년 9월 출시했다. AI 스코어는 18가지 질문을 통해 1,000점 만점으로 평가를 실시하고 추가적으로 150개 항목(생활, 성별, 금융정보, 프로필 등)을 입력하면 대출한도, 금리를 자동으로 산정하여 제시한다. 자신의 신용점수를 외부 업체에 제공하는 데 동의한 고객은 현금, 전자화폐, 금리 우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J.Score는 2018년 10월, 개인정보를 활용에 대한 리워드 프로그램인 ‘AI Score Reward’를 출시하였다. 회원등급은 퓨터(백랍),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등 6단계로 구분되며 회원은 매월 활동실적에 따라 여행사, 레스토랑, 어학원 등 다양한 제휴기업에서 제공하는 보상을 선택하여 받을 수 있다.

일본의 위성방송사인 Sky Perfect JSAT Holdings는 J.Score와 제휴를 체결하고 2019년 7월부터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개인데이터를 외부와 공유하고 월 시청료를 할인해주는 상품을 선보였다. 축구, 농구, 야구 등 해외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개인 데이터를 스포츠 기업에 제공하고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시청자의 시청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Sky Perfect JSAT Holdings는 2019년 2,500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시범 서비스를 전개하고 2020년부터 가입자 전체로 본 서비스를 확대하였다.

이외에도 일본의 종합광고회사 덴츠의 자회사인 마이데이터 인텔리전스(My data Intelligence)는 2019년 7월, 정보은행 개념인 ‘MEY’를 오픈하였다. MEY는 ‘Me+Key’의 합성어로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열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MEY에서는 개인의 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이를 원하는 제3의 기관에게 제공하는 양방향 플랫폼으로 개인은 스마트폰앱을 통해 데이터 이용 목적, 데이터 제공에 따른 보상 등 조건을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해도 좋을 기업을 선택할 수 있다. 개인 데이터를 제공한 회원은 보상으로 각종 포인트, 전자 화폐, 전문 콘텐츠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운동을 나가는 사용자에게는 미리 날씨정보를 알려주고 저녁에 먹거리를 사러 동네 마트를 가는 사람에게 ‘모바일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이다. MEY는 종합광고대행사인 모회사 덴츠의 지원 아래 다양한 업종의 기업 브랜드를 유치하고, 개인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마케팅 관련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주부전력이 2020년 3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오픈한 지역 생활형 정보은행 서비스인 마인리(MINLY)는 연령, 성별, 관심사항, 행동이력 등 개인정보를 예탁한 지역 사용자를 대상으로 모바일 앱을 통해 주변 소매점, 음식점 등에 대한 쇼핑정보와 할인쿠폰, 이벤트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마인리 정보은행에는 50개가 넘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정보은행 성공여부는 신뢰성 확보와 비금융 분야와의 융합이 관건

유럽과 일본에서 먼저 시작한 정보은행은 국내에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정식 출범까지 5년 이상이 소요된 일본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한국형 정보은행이 정식 출시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마이데이터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형 정보은행 도입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금융은 물론 비금융 분야의 개인 데이터 활용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고 기술적·제도적 보완은 물론 시범서비스를 통해 실질적인 성공사례 축적이 필요하다. 또한 금융업계에서도 비금융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사업계획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결국 정보은행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여부는 개인정보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고 공정한 운영원칙과 개방형 협력시스템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확대하여 플랫폼의 특징인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 데이터와 민간 데이터 유통·활용 촉진 및 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한 통합 기본법 체계를 수립하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개방하는 데이터 플랫폼 활성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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