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먼저고, 뱅킹이 다음인 세상

202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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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대훈(SK증권 애널리스트)

 

금융을 둘러싼 플랫폼 제국과 금융제국의 맞대결

인류사회가 수천 년간 이어져오면서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돈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인류사회를 지배하던 샤머니즘은 점차 약해졌다. 돈을 쌓는 행위가 중요해졌고, 돈의 축적이 곧 영예이자 힘이었다. 점차 교회 중심의 권력은 돈을 관리하는 은행으로 넘어갔다. 가장 힘이 세 보이는 것은 정치권력이지만, 그 이면에서 그들을 조정하는 은행들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지급준비율은 은행에 날개를 달아줬다. 은행들은 가진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대출하기 시작하며 금융제국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산분리법 폐지 혹은 완화를 주장하며 대기업들이 은행업에 진출하고 싶어했다.

이런 은행이 도전을 받고 있다.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는 테크기업들이 그 상대다. 그들은 금융제국의 본거지 뉴욕 월스트리트의 반대편 팔로알토의 실리콘밸리에서 이미 플랫폼 제국을 형성했고, 무섭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테크기업들의 영역파괴와 가파른 상승세는 매우 가파르다. 이제 글로벌 증시 시가총액 상위권은 대부분 미국의 거대 테크 및 플랫폼 기업들의 차지다. 미국의 5대 테크 및 플랫폼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의 시가총액 합은 마침내 독일의 GDP를 넘어섰다. 이들 기업은 이용자 수 확대→데이터 확보를 통한 생산성 증대→이익개선이라는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커질 전망이다.

그리고 급기야 이들 테크기업들은 금융업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애플은 이미 애플페이를 통해 결제업무를 제공하고 있고, 골드만삭스와 손 잡고 장기 할부 결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은 은행 계좌 개설과 간편송금, 생활비 관리 등의 기능을 추가한 구글페이를 출시했다. 아마존도 대출서비스를 준비 중이고, 페이스북은 디엠(Diem)이라는 자체적인 디지털화폐 발행을 준비 중이다.

 

임베디드 금융의 확산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이른바 XaaS(Anything-as-a-Service) 시대를 불러왔다. 이를 배경으로 전자상거래 기업 등 비금융회사가 본업인 제품의 판매∙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면서 금융 수익을 추가로 획득하는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고객이 다른 서비스 공간에 별도로 접속하지 않아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관련 금융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임베디드 금융과 관련된 주요 시장 참가자는 ① 대규모 고객 접점을 가지고 있는 비금융회사(Containers)_빅테크 기업 ② 금융기능을 제공하는 금융회사(Providers)_ 금융 라이선스를 가진 금융기관 또는 핀테크 기업 ③ 앞서 두 시장 참가자를 연결해 주는 핀테크 기업(Enablers)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임베디드 금융을 제공하는 주요 비금융 회사에는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차량호출, 온라인 스토어 등이 포함되며 점차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국내에서도 임베디드 금융이 확산되고 있는데, 검색엔진 네이버의 네이버파이낸셜은 결제 외에도 대안신용평가시스템(ACSS)을 통한 신용대출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보험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소셜미디어인 카카오는 방대한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결제, 은행, 증권에 이어 카카오페이가 디지털 손해보험 직접 진출을 결정하고 금융당국으로부터 예비인가를 획득하며 테크 기업 최초로 보험업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핀테크 기업 인수 등을 통해 금융서비스 제공과 함께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임베디드 금융시장에서 금융회사의 역할과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대규모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테크기업들이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으로 편리하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그만큼 전통 금융회사의 위기로 볼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오랜시간 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데이터를 통해 변화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이미 본인들이 더 이상 금융회사가 아닌 IT회사임을 천명하고 있고, 피델리티도 빠르게 변하면서 디지털금융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는 세간의 관심을 받은 명저다. 크리스텐슨은 성능을 개선하고 이전보다 발전되는 과정을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라고 따로 구분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혁신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후발기업이 제품을 단순하고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제공하면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바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존속적 혁신만 하고자 하면, 거듭되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디스럽터(Disruptor)라는 소리를 듣는 플랫폼 기업들에게 주도권을 내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늘날 존속적 혁신만을 외치는 사이, 파괴적 혁신을 일삼았던 디스럽터(Disruptor)들은 이제 금융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제 아마존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고, 대출도 받고, 여러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동남아의 우버(Uber)로 불리는 그랩(Grab)도 온라인 쇼핑업체와 결제 회사를 인수하며 금융업에 손을 대고 있다. 이제는 사람을 다수 확보해 많은 데이터(Data)를 축적한 회사들은 손쉬운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금융업 진출을 시도할 수 밖에 없다.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과 알리바바 뿐 아니라 공유자동차 업체인 우버(Uber)나 그랩(Grab)이 금융업 진출을 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이 결제서비스를 필두로 한 금융서비스를 런칭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은행을 방문할 때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고, 과정도 단순하고 쉽다. 어려서부터 이런 금융서비스가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사회의 주력으로 성장하면서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제국의 반격 그리고 규제 마련의 필요성

임베디드 금융 시장이 커질수록 이제 금융기업들도 IT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하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포춘(Fortune)>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非테크기업들도 이제 IT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은행들은 IT에 대한 투자규모를 큰 폭으로 확대하고 있다. 즉, IT 기업들의 침범에 IT 설비투자를 늘리며 한판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기업들은 본인들의 강점을 살려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우위를 선점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디지털 자산을 통해 수익성 확대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① 골드만삭스, 이제는 은행이 아닙니다

미국의 금융기관 중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다.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로이드 블랭크페인(Lloyd Blankfein)은 지난 2015년 4월 골드만삭스가 기술기업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기준으로 골드만삭스는 약 3.3만 명의 정규직 직원이 있었는데, 이 중 9,000 명이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였다. 당시 페이스북의 전 직원 9,200명 중에서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가 아닌 사람이 많았던 만큼, 골드만삭스의 IT 인력은 세계적 IT 기업인 페이스북보다 더 많았던 셈이다.

이런 골드만삭스가 애플과 손을 잡고 카드를 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리테일 부문 강화에 초점을 맞출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경쟁업체들에 비해 리테일 기반이 취약하다. 정부와 기업, 고액자산가들만을 상대한다는 인식이 강한 회사기도 하다. 평범한 투자자들과 거리를 두던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 금융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리테일 부문 강화를 시도했다. 마침내 2016년 골드만삭스는 창업자 마커스 골드만(Marcus Goldman)의 이름을 딴 리테일 은행 마커스(Marcus)를 미국에서 출시했다. 그 후 고금리 예금상품을 기반으로 영국 리테일 예금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등 점차 해외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다수 보유한 애플은 골드만삭스에게 고객을 모집해 줄 최고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3년 이후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늘려왔다. 디지털 자산 OTC를 영위하는 등 디지털 자산 시장 내 최고의 금융 플랫폼 중 하나인 써클(Circle), 그리고 지갑을 제공하는 빗고(BitGo)가 대표적이다. 이미 애플페이를 보유한 애플 입장에서도 디지털 자산에 대한 인프라와 투자가 많은 골드만삭스가 매력적인 파트너였을 것이다. 이렇게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두 회사는 파트너가 됐다. 이후 골드만삭스는 디지털지산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매니저를 채용했고,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② JP모건, 금융의 왕은 바로 나!

JP 모건의 행보 역시 예사롭지 않다. JP 모건은 과거 금융뿐 아니라 철도, 철강, 통신, 영화산업 등 실물경제를 장악한 실세 중의 실세였고 미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회사다. 한때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전통적인 화폐 시스템과 금융시스템에 도전했던 비트코인의 등장에 JP 모건의 CEO 제레미 다이먼(Jamie Dimon)은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런 JP 모건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폄하했던 다이먼 CEO가 블록체인은 실재하는 기술이라며 입장을 바꿨고, 암호화폐 및 디지털 자산이 기존 은행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은행이 해오던 송금이나 결제와 같은 서비스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긴장감도 나타나고 있다. JP 모건의 CFO 마리안 레이크(Marianne Lake)도 지난 2016년 JP 모건을 기술회사라고 선언했다. 당시 JP 모건은 4만 명의 기술자로 구성된 팀을 운영 중이며, 이 중에는 지적 재산권을 창출하는 1.8만 명의 개발자가 포함돼 있었다

급기야 JP 모건은 JPM이라 불리는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JPM은 JP 모건의 기업 고객들끼리 오가는 실시간 결제를 일부 맡아 처리할 계획이다. 또한 JPM을 통해 송금방식을 대체할 계획인데, 이는 해외로 돈을 송금하는데 있어서 가장 보편화된 송금 방식인 전신 송금(wire transfer)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기업들 사이의 결제와 청산에 JPM을 도입하면 결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도 있다. JPM은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즉시 결제하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IT 업체들과 제휴하거나 플랫폼을 구축할 때 JPM이 모바일 결제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③ 피델리티, 디지털 자산 금융의 원조

마지막으로 피델리티(Fidelity)도 눈여겨 볼 만하다. 피델리티는 앞에 소개한 골드만삭스나 JP 모건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디지털 자산 분야에 있어서 존재감이 있는 회사다. 피델리티는 혁신의 DNA가 흐르고 있는 회사고, 이 혁신의 DNA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심과 투자로 이어졌다. 이미 지난 2014년 피델리티는 비트코인에 대한 리서치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블록체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2016년에는 디지털 자산 분야 사업을 위해 업계와 학계에 파트너쉽을 구축했으며 현재까지도 확장 중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피델리티는 지난 2018년 10월 자회사 피델리티 디지털 자산서비스(Fidelity Digital Asset Services)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뉴욕주 금융감독청(NYDFS)로부터 신탁회사 인가를 받았다. 피델리티는 이 자회사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외에 영국지사를 설립하는 등 글로벌 영역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피델리티가 디지털 자산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이미 전 세계 자산운용사의 경쟁은 치열하다. 수수료 인하를 통한 고객 확보에 혈안이다. 각사의 수수료 인하 전쟁으로 자산운용업의 수익은 크게 감소했다. 점점 작아지는 파이를 두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자산시장에서 수수료 수입이 급감했다면 새로운 시장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데 피델리티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그 미래를 엿볼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임베디드 금융 시장 진입을 위해 핀테크에 동참하고 있다. 비자(VISA)가 API 뱅캥서비스를 제공하고 미국 핀테크 기업 Plaid를 53억원에 인수했고, 스페인 은행그룹 BBVA는 신용카드, 결제, 예금 및 기타 기능을 위한 API 제품군을 제3자에게 제공하는 BBVA 오픈 플랫폼을 미국에 출시했다.[i]

임베디드 금융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국내 임베디드 금융 서비스도 점차 늘고 있다. 비금융회사및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할수록 비금융회사가 금융산업에 끼칠 영향에 대해 다각도로 고려해봄과 동시에 전통 금융사들과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규제 체계 역시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i] 자본시장연구원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의 성장과 규제」 2021-15호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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