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투자증권의 SK증권 인수, 증권업계의 지각변동 불러올까?
케이프투자증권이 SK증권을 인수했다. 지난해 6월 LIG투자증권을 인수해 증권계에 뛰어든 케이프는 이번 합병 이후 자기자본 규모가 7000억 원에 육박하는 증권업계 상위 20위권의 중견 증권사로 도약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증권업계에서는 중소형 증권사들의 몸집 불리기 경쟁과 초대형 투자은행(IB) 등장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글 김익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케이프투자증권이 예상을 뒤집고 SK증권 새 주인으로 결정됐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큐캐피탈파트너스가 SK증권 인수전 당시 케이프투자증권보다 높은 매입 가격을 써냈다. 하지만 SK그룹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 통과 여부 등을 고려해 케이프투자증권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금융 당국 승인을 거쳐 올해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합병 작업이 끝나면 두 증권사의 합산 자기자본 규모가 7000억 원에 육박하는 동시에 증권업계 상위 20위권(자기자본 기준)으로 진입하게 된다.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 인수 이후에도 좋은 매물이 나오면 재차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다고도 밝혔다. 하이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을 비롯한 증권사 매물이 줄줄이 등장할 예정인 만큼 증권업계의 ‘이합집산’도 활발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5000억~1조 원 수준인 중소형 증권사들이 케이프투자증권처럼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초대형 IB 등장으로 증권업계의 경쟁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하는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케이프투자증권 “증권사 추가 인수 검토”
케이프투자증권은 선박엔진부품을 제조하는 상장사인 케이프의 계열사다. 케이프는 지난해 6월 PEF 운용사인 케이프인베스트먼트를 통해 LIG투자증권 지분 82%를 1300억 원에 인수했다. LIG투자증권은 올해 1월 1일 회사 이름을 케이프투자증권으로 바꿨다. 인수 작업을 주도한 케이프인베스트먼트의 임태순 대표는 지난해 6월 케이프투자증권 사장으로 임명됐다. 임 대표는 KTB투자증권 등에서 근무하며 한국기술금융(현 KTB투자증권)과 팬택앤큐리텔, 한국토지신탁 인수 작업에 관여했다. 케이프투자증권으로 옮기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증권사 인수를 타진했다. 올 들어 하이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인수전에 참여했으며 아주캐피탈 등의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임 대표는 “가격 조건만 맞는다면 하이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증권사는 물론 금융사도 인수할 계획”이라며 “보유 자금도 넉넉하고 자금을 대줄 재무적투자자(FI)도 많기 때문에 인수 대금 조달에 자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케이프투자증권이 M&A를 진행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많았다. 케이프투자증권의 올 상반기 말 자기자본 규모는 2034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수 대금 조달 전략을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케이프투자증권은 PEF를 조성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동시에 인수금융을 받아 인수금을 충당한다. 이렇게 인수 대금 조달에 대한 전략을 짜면 자기 현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대규모 M&A 작업을 추진할 수 있다. 케이프인베스트먼트가 LIG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도 매입 금액 1300억 원 가운데 700억 원은 유안타증권을 통해 차입했고, 나머지 600억 원가량은 PEF를 통해 마련했다. 당시 PEF 투자자로 새마을금고, 과학기술인공제회, 산은캐피탈 등이 참여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을 인수해 증권업계 내에서 위상이 올라가면서 자금조달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LIG투자증권 실적이 대폭 향상되면서 투자자들 반응이 좋아졌다”며 “SK증권 인수 자금 조달 과정에서 투자하겠다는 금융사들의 문의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케이프, 자기자본 1조 돌파할까
케이프투자증권의 연결기준 자기자본 규모가 향후 1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 상반기 말 케이프투자증권(2040억 원)과 SK증권(4337억 원)의 자기자본 합산 규모는 6377억 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자기자본 기준으로 증권업계 상위 18위 수준이다. SK증권은 케이프투자증권 편입 이후 1000억 원가량 유상증자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증자 이후 두 증권사의 자기자본 합산 규모는 7000억 원을 웃돌 전망이다. 케이프투자증권이 하이투자증권(자기자본 6891억 원)과 이베스트투자증권(3769억 원)을 인수한다면 자기자본 1조 원은 물론 증권업계 상위 10위권 진입도 노려볼 수 있다.
케이프투자증권은 SK증권 등을 인수한 이후 IB 사업을 대폭 보강하는 방식으로 경영 내실을 다진다는 계획도 세웠다. 전신(前身)인 LIG투자증권은 LG·GS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두 그룹 계열사 회사채 발행 주관사를 자주 맡아 왔다. SK그룹 계열사의 채권 인수 물량이 많은 SK증권과 함께 여러 대기업 계열사 회사채 주관을 따내는 방식으로 채권발행시장(DCM) 실적을 끌어올릴 방침이다. 임 대표는 “SK증권이 강점을 보이는 PEF 사업과 케이프투자증권의 바이아웃(저평가된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되파는 전략) 역량을 결합해 M&A 사업도 확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SK증권의 지점망을 확보하면서 투자 상품을 판매할 통로가 넓어졌다”며 “IB, 리테일 수익이 동시에 늘어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임 대표의 최근 성과도 이런 자신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2013년에 33억 원, 2014년 7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던 케이프투자증권은 임 대표 부임 이후 IB부문 실적이 급속도로 올라가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인 118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케이프투자증권이 자기자본 규모가 2배가량인 SK증권을 인수하면서 여러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케이프투자증권이 SK증권의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한 만큼 마찰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민 커진 중소형 증권사
증권업계의 판도는 초대형 IB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초대형 IB 육성 방안에 따르면 자기자본이 4조 원을 넘어서면 자기자본 200% 한도에서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자기자본이 8조 원을 웃돌면 종합투자계좌(IMA) 운용과 부동산 담보 신탁 업무도 할 수 있다. 대형 증권사의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는 지원 정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등에 묶여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중소형 증권사 지원책으로 중소·벤처기업 자금조달 업무에 특화된 ‘중기(中企) 전문 IB’ 육성 방안이 나왔지만 실적에 기여하는 규모는 미미하다. 대형 증권사와 경쟁에 밀려 갈수록 실적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와 중소형 증권사의 실적 양극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초대형 IB로 도약하려는 대형 증권사의 ‘M&A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새로운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자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몸집 불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증권업계에서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주주들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릴 것으로 내다봤다. 케이프투자증권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M&A에 나서자 중소형 증권사들도 자극을 받고 있다. 이들 증권사 일부는 케이프투자증권처럼 M&A 시장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매물로 등장한 하이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을 놓고 인수 경쟁이 보다 뜨거워질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증권업계 진입을 노리는 우리은행과 호반건설도 시장 판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노리는 우리은행이 자회사인 우리종합금융을 증권사로 전환한 이후 매물로 나오는 증권사를 사들여 덩치를 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올 들어 SK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인수를 검토했던 호반건설은 넉넉한 ‘곳간’을 바탕으로 증권사 인수를 지속적으로 타진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의 현금성 자산과 단기 금융상품 합계액은 5749억 원에 이른다. 부채 비율은 46.3%로 건설업계에서 가장 우수한 재무 구조를 갖춘 곳으로 꼽힌다. 넉넉한 현금 자산 운용 수익률을 높이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증권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들이 자본력을 갖춘 우리은행과 호반건설을 새 주인으로 맞아 몸집을 불리려는 시도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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